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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승이 물었다.
"바로 눈앞에 직면한 일이란 어떤 것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네가 바로 직면한 사나이야."
問 覿面事如何 師云 你是覿面漢
눈앞의 직면한 일은 바로 닥친 일이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일은 ‘눈앞의 일’이다. 사람이 사는데 무엇이 바로 직면한 일일까? 조주 스님은 그것은 '바로 앞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했다.
선(禪)은 비유로 세상사를 설명한다. 직면사를 멀리 찾을 필요 없다. 눈앞에 사람이 있으면 오로지 그 사람에게 집중해야 한다. 그가 무엇이 필요한지, 그에게 어떤 조언과 행동이 적합한지 생각할 뿐이다. 가족이 있으면 가족이 직면사이다. 국가가 있으면 국가가 직면사이다.
인생의 의미를 멀리 보지 마라. 자식이 있으면 자식이 직면사이다. 평소 어떻게 대하고 무슨 말을 해주고 어떤 행동을 보여야 자식이 장차 그의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것인지 그것을 항상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직면사를 잃고 그때그때 적절한 처신을 하지 않아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고 난 후에 후회한들 무엇 할 것인가. 현재 직면한 일이 그대의 인생이고 도(道)이다. 그 직면사를 똑바로 보고 소홀히 하지 말라.
학승이 물었다.
"무엇이 부처가 지향하여 가는 길을 가는 사람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밭갈이 소를 끌고 가는 사람이야."
問 如何是佛向上人 師云 只者牽耕牛底是
향상인(向上人)이라는 말은 한 단계 높은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불향상인(佛向上人)이라 하면 부처가 지향하여 가는 길을 가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밭을 가는 농부는 묵묵히 밭을 갈 뿐이다. 장차 이 일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 결실을 맺어줄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피곤하다고 짜증 한번 내지 않고 다만 묵묵히 농부의 길을 간다. 가끔 그 일이 즐거워 노래도 하고 손뼉을 치며 장단을 맞추기도 하지만 그 모두 자연의 오묘함에 감동된 사람만이 자기를 버리고 취할 수 있는 행동이다.
부처가 지향하여 가는 길도 농부의 길과 같다. 사람의 마음 밭을 갈고 가꾸는 것은 장차 이 세계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부처는 중생의 마음 밭을 묵묵히 간다. 생각해 보라. 마음을 빼놓고 어찌 지구의 평화를 논하겠는가. 지구를 구하려면 사람의 마음을 먼저 구하여야 한다. 마음이 평화롭지 않으면 세계 평화는 요원하다. 그래서 조주 선사는 부처님을 밭가는 농부에 비유한 것이다.
“이뎌, 이뎌, 어~히~ 워워!”
학승이 물었다.
"다급한 것이란 어떤 것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그처럼 물었다면 자네는 어떻게 말하겠는가?"
학승이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조주 스님이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말하지. 최고로 빨리 신발을 신고 물위에서 말을 달리고 서울 장안에 도착하여도 신발 끝조차 젖지 않는 거야."
問 如何是急 師云 老僧與麽道 你作麽生 云 不會 師云 向你道 急急著靴水上立 走馬到長安 靴頭猶未濕
앞에서 나온 '직면사'에 대한 것은 눈앞에 닥친 ‘중요한 일’이라는 의미가 강하고, 여기서 말하는 '급하다' 는 것은 '가장 빨리 해야 할 일' 이라는 의미가 강한 문답이다.
조주 스님이 “최고로 빨리 신발을 신고 물위로 말을 달려 서울 장안에 도착하여도 신발 끝조차 젖지 않는다.” 라고 한 말은 말을 타고 강을 건너도 얼마나 빠른지 물방울이 신발을 젖게 하는 시간보다도 더 빠르게 장안에 도착하여 신발 끝도 젖지 않을 정도로 신속한 것을 말한다. 우리 속담에 ‘왼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오른 발을 내딛고 오른 발이 땅에 닿기도 전에 왼 발을 내딛어 달릴 정도로 바쁘다’는 말과 같다. 이 정도 되어야 그것을 가히 급하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런 정도의 급한 일이 무엇일까?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겠다.
"너 자신을 아는 거야."
無不禪院 禪院長 石雨
(cafe.daum.net/mubulsun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