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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승이 물었다.
"대가섭의 가사(옷)는 (더 이상) 조계(曹溪)의 길을 밟지 않는다고 합니다. 누가 그것을 입을 수 있겠습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허공은 세상에 나타나지 않아. 도인은 도무지 모를 뿐이야."
問 迦葉上行衣不踏曹溪路 什麽人得披 師云 虛空不出世 道人都不知
부처님이 입던 가사는 제자 가섭이 물려받은 후 대대로 제자에게 물려주는 관습이 있었다. 그런데 중국의 육조 스님 이후로는 가사를 전하는 관습이 없어졌다. 육조 혜능 스님이 오조 홍인 스님에게 가사를 전해 받은 후 시기하는 다른 제자들에 의하여 죽을 뻔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제자에게 가사를 전하지 않은 것이다.
허공은 빈 것이다. 영원히 세상에 그 존재를 나타내지 않는다. 아무리 존귀한 부처님의 가사라고 해도 이미 닳아서 없어졌다. 없어진 물건이 어찌 다시 나타나겠는가. 그럴 일은 없다. 그러하니 그 가사를 누가 입을 것인지 도인이라고 해도 모른다.
그런데 설사 누가 부처님의 가사를 입고 있다한들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하겠는가. 그것은 이미 지나간 석가여래불의 가사이다. 그대는 이미 그대 자신불(自身佛)의 가사를 입고 있다. 그러하니 남의 가사에 신경을 끊고 그대 자신의 가사를 입고 당당하게 부처의 길을 가라.
학승이 물었다.
"어떤 것이 번잡하나 잡스럽지 않는 것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나는 채식을 하면서 항상 재계(齋戒)한다."
학승이 말했다.
"그러한 일로부터 초연해 질 수 있습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재계를 파하는 것이야."
問 如何是混而不雜 師云 老僧菜食長齋 云還得超然也無 師云 破齋也
채식을 하려면 간단하지 않다. 봄나물은 산에서 나물을 채집하여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서 말린다. 그후 먹고 싶을 때 다시 삶아 맑은 물에 헹궈서 소금과 기름, 식초를 약간 넣고 잘 볶으면 맛난 산나물이 된다. 밭에서 캐는 채소는 심고, 가꾸고, 캐고, 다듬고, 절이고, 양념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일일이 생각해 보면 쾌나 번잡하다. 그러나 이렇게 번잡해도 육식을 하지 아니하고 채식을 하는 것은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몸을 잘 다스리기 위함이다. 이것을 재계(齋戒)라 한다.
재계는 원래 옛날부터 제사나 기도를 하기 전부터 끝날 때까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는 것을 말한다. 선방에서는 3개월간 재계한다. 이렇게 재계할 때는 생각을 비워야 하고 말도 조심해야 한다. 큰소리나 험한 말을 하면 안 되고, 예의에서 벗어나면 안 되며, 고성방가도 안 되고, 옷깃을 풀어헤치고 다녀도 안 되고, 신발을 끌고 다녀도 안 되고, 식사시간을 어겨도 안 된다. 쾌나 복잡한 것 같으나 이런 것이 있어야 마음이 한 곳으로 모아지고 쉬게 된다. 이것은 번잡한 것 같지만 되레 잡스러워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이런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는 없는가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행을 무시하면 재계를 파하는 것이다. 재계를 파하면 처음에는 자유롭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세상사에 구속되어 더 부자유스러워지게 된다.
학승이 물었다.
"어떤 것이 옛날 사람의 말(言)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자세히 들어봐. 자세히 들어."
問 如何是古人之言 師云 諦聽諦聽
나 같은 노인의 말이 옛날 사람의 말이다. 자, 자세히 들어봐라. 들어봐! 이런 말을 하는 이 노승의 말이 뭐 별다른 것이 있더냐? 특별한 것은 없다. 설사 있다고 해도 그것은 네 스스로 눈에 콩깍지를 씌워서 그렇게 보는 것일 뿐이다. 특별한 것을 찾는 마음부터 쉬어라. 평범해져라. 평범해져.
無不禪院 院長 石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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