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스크랩] 조주록강의 54 (110330) 노승도 부처가 아닐세

희명화 2015. 4. 8. 21:45



어떤 수재(秀才 : 서생)가 스님의 손 안에 있는 주장자를 보고 말했다.
"부처님은 중생의 원을 물리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그렇다네."
수재가 말했다.
"저는 화상의 손 안에 있는 주장자를 가지고 싶은데 얻을 수 있겠습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군자는 남이 좋아하는 것을 빼앗지 않아."
수재가 말했다.
"저는 군자가 아닙니다."
조주 스님이 말했다.
"노승도 또한 부처가 아닐세."

有秀才見師手中柱杖乃 云 佛不奪衆生願是否 師云 是 秀才云 某甲就和尙乞取手中柱杖得否 師云 君子不奪人所好 秀才云 某甲不是君子 師云 老僧亦不是佛

이 대담은 수행자들의 일상적 규범과 동시에 조주 화상의 재치를 알아볼 수 있는 내용이 들어있다. 남이 좋아하는 것을 취해서는 안 된다는 규범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선의 재치로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초심자들이 처음 입문하여 진리를 접할 때 모순된 이론에 직면할 수 있다. 불교의 진리는 단순한 종교적 교리라기보다 우주의 근원에 대한 것과 원리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불생불멸(不生不滅), 불구부정(不垢不淨), 부증불감(不增不減)은 사람들이 눈에 보이는 것은 진리가 아니고 단지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는 것일 뿐'이라는 중생의 오판을 지적하면서 동시에 참 진리적 측면을 설파한 것이다. 진실은 생이 아니고 죽음이 아니며, 더럽지 않고 깨끗하지 않으며,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진리를 단순히 사람의 입장에서만 보는 것이 아닌 우주적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는 공평한 관찰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진리가 그러하기 때문에 깨끗할 필요가 없고 더러운 것을 싫어할 필요가 없을까? 그렇지 않다. 진실은 분명 불구부정이지만 인간이 만든 세계는 공평한 진리와 다른 인간의 꿈으로 이룩한 세계이다. 불구부정이 진리이지만, 인류는 자연이 인류에게 반드시 행복한 은혜만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따라서 냉혹한 자연을 극복하기 위하여 인류의 문명을 창조해낸 것이다. 문명이 나은 문화생활은 인간의 규범을 만들어서 반드시 지켜져야 할 정의라 자처하였고, 지켜지지 않을 때는 법으로 단죄하였다. 그것이 진리든지 비진리든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수의 행복에 반한다면 다수는 소수를 단죄할 수 있다는 인간들만의 윤리이고,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받아들여야 하는 운명적 규범이다.

인간의 문화생활은 인간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측면이 강할 수밖에 없다. 또한 인류의 문명이 인간을 결코 행복하게 하는 것일까에 대한 비판적 측면도 강하게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인류의 문화는 인간은 원래 문화인이 아니라 자연인이라는 평범한 진실을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 추종에서 오는 불합리한 규범은 사람을 비이성적으로 몰아갈 수 있다. 이에 붓다는 범우주적인 관점을 설파하고 인간의 순수성을 강조한 것이다. 동시에 붓다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한 인류의 규범에도 승복해야한다고 말했다. 그것이 바로 방대한 붓다의 계율론이다.

한 마디로 붓다는 인간중심적 사고를 벗어나서 범 우주적 진리를 깨닫고 인류의 규범도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붓다적 삶은 내면으로는 공평한 진리에 사무치는 것이고, 외면적으로는 현실적인 상황을 개척하면서 때로는 초연히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따라서 붓다적 삶은 규범을 중시하면도 비규범적인 것도 받아들이는 삶이다. 그야말로 한 가지에 고정하지 않는 삶인 것이다. 따라서 수행자는 철저히 지켜야할 규범과 규범을 벗어나도 되는 것을 잘 가려서 나아갈 길을 찾아야 한다.

無不禪院 禪院長 石雨
(cafe.daum.net/mubulsunwon)

 

 

 

 

 

 

 

 

출처 : 무불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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