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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승이 물었다.
"출가하여 맹세코 무상(無上) 지혜를 구할 때는 어떠합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아직 출가하지 않았을 때는 지혜에 쓰임을 당하고, 이미 출가한 이후는 지혜를 사용하는 거야."
問 未審出家誓求無上菩提時如何 師云 未出家被菩提使 旣出家使得菩提
출가는 선악시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선악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미운 자가 있고 범죄가 있고 잘 난 자가 있고 가난한 자가 있게 된다. 이런 차별심이 있는 상태에서 지혜를 사용하면 그 지혜는 어디까지나 용광로에 떨어지는 눈[雪]과 같을 뿐이다. 그 지혜로 인하여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게 되므로 다른 지혜를 계속 내놓는 것을 반복해야 한다. 이런 지혜는 세상에 끌려 다니는 유랑지혜에 불과하다.
그러나 선악시비에서 벗어나면 세상사가 한 눈에 드러나게 된다. 무엇이 근원적인 처방인지 그 맥이 정확히 파악된다. 따라서 선악시비를 떠난 사람이 한번 지혜를 사용하면 매우 적합한 지혜가 되므로 오랫동안 유효하게 된다. 지혜를 사용하는 것과 지혜에 끌려 다니는 것의 차이는 이렇게 크다.
조주 스님이 하루는 외출을 하였다가 한 노파가 논에 볏모를 심고 있는 것을 보고 말을 걸었다.
"만일 사나운 범을 만나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노파가 말했다.
"이 세상에 무엇 하나 나의 마음의 상대가 되는 것은 없어요."
조주 스님이 "퇴엣!"하고 침을 뱄어보았다.
그러자 노파도 "퇴엣!"하고 침을 뱄었다.
조주 스님이 말했다.
"아직도 그게 있잖아."
師因出外 見婆子揷田云 忽遇猛虎作麽生 婆云 無一法可當情 師云唋 婆子云唋 師云 猶有者箇在
이 세상에 무엇 하나 마음에 상대가 되는 것이 없다면 가히 여장부이다. 조주 스님은 정말 그런가 하고 노파에게 침을 뱉어서 시험해본 것이다. 그랬더니 노파도 당당히 침을 뱉어 상대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렇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식으로 상대하는 것은 불행의 씨앗이 될 뿐이다. 특히 남자 여자가 싸우고, 범과 여자가 싸울 때는 이런 식의 상대는 오히려 손해를 가져올 뿐이다.
정말로 어떤 것도 마음에 상대가 안 된다면 한낱 침 뱉는 것에도 마음이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부처님은 이교도가 바로 눈앞에서 험악하게 험담을 하여도 전혀 상대하지 않았다. 이교도가 돌아간 뒤에 부처님의 제자 아란이 어찌하여 대응하지 않았느냐고 묻자, 부처님은 허공 위에 침을 뱄으면 그 침이 어디로 가겠느냐고 아란에게 물었다. 당연히 그 침은 자신의 얼굴에 떨어질 것이다. 험담에 대응하지 않으면 말한 사람이 다 가지고 가게 되어있다는 가르침이다.
'아직도 그게 있다는 말'은 아직 마음에 걸림이 있다는 말이다. 걸림이 있으면 마음이 아직 자유롭지 못한 것이고 그렇다면 진정한 장부라고 할 수 없다.
無不禪院 禪院長 石雨
(cafe.daum.net/mubulsunw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