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스크랩] 조주록강의 42 (101120) 의지하려면 땅을 밟아서고, 의지하지않으려면...

희명화 2015. 4. 8. 21:40



학승이 물었다.
"부처나 조사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에는 부처나 조사가 전하여 주었습니다. 부처나 조사가 입멸한 후에는 누가 전하는 것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모두 노승 같은 사람의 일이다."
학승이 물었다.
"도대체 무엇을 전하는 것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하나하나 모두 생사를 면하지 못하는 말들이다."
학승이 물었다.
"불조의 뜻을 묻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조주 스님이 말했다.
"무엇을 전한단 말인가?"

問 佛祖在日佛祖相傳 佛祖滅後 什麽人傳 師云 古今總是老僧分上 學云 未審傳箇什麽 師云 箇箇總屬生死 云 不可埋沒卻祖師也 師云 傳箇什麽

진정한 선사라면 아무리 좋은 방ㆍ할ㆍ기연언구라 하여도 모두 생사의 업을 짓는 것들이라고 말해야 옳다. 중생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부득이 그것들을 쓰는 것이지 그것들이 모두 절대적 진리는 아니다. 중생의 병을 고치면 약은 '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해야 참다운 스승이다.

도대체 무엇을 전한다만 말인가? 선사가 전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중생은 이미 완벽하게 갖추고 있다. 중생은 본래 부처이다. 깨어나면 부처이고 못 깨어나면 중생이다. 선사는 잠들은 중생을 깨우는 것이다. 깨어나는 것은 중생 스스로 한다. 깨우는데 쓰이는 방편은 한낱 도구일 뿐이다. 그 도구가 진리는 아니다. 따라서 선사들이 무엇을 전하는 것은 없다. 다만 잠들은 부처를 흔들어 깨울 뿐이다.

학승이 물었다.
"멀리서 조주의 이름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어찌하여 스님이 보이지 않습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그것이 나의 죄과(罪過)인걸."
問 遠問趙州到來 爲什麽不見 師云 老僧罪過

본 <조주록>에는 간혹 질문의 수준이 높은 객승들도 등장한다. 이 문답에서도 수준이 있는 객승의 질문이 나왔다. 조주 스님을 앞에 두고 스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그런데 이 말은 진실을 말한 것이다. 이 객승이야말로 <금강경>사상을 그대로 실천하면서 사는 사람이다. <금강경>에서 '모든 것은 다만 이름일 뿐'이라고 했다. 그 실체는 없는 것이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설법이다. 이르러 사상(四相) 중에 무아상(無我相)의 설법이다.

그런데 그에 맞추어 조주 선사의 대답도 걸작이다. 그것이 바로 나의 운명적인 죄과라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나는 없는 것이니 그야 말로 조주의 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누구든지 나(我)는 없는 것이다. 우리가 끝없이 '나'를 주장하지만 그것은 잠자는 사람의 잠꼬대일 뿐이다. 무엇이 나이던가. 나는 없고 대자연만 있다. 나는 없고 대우주만 있다. 자연이 나이고 우주가 나이다. 모두 한 덩어리일 뿐 개별적인 나는 없다. 나가 없으니 손해도 이익도 없는 것이다. 한 마음 평온하면 세계가 평온해진다.

학승이 물었다.
"밝은 달이 허공에 걸려있을 때(朗月當空) 방 안의 일은 어떻습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나는 출가한 이래 살림살이를 계획하는 일은 짓지 않았어."
학승이 말했다.
"그러면 화상께서는 현 시대를 위한 일은 하지 않으십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자기 병(病)을 구할 수 없는데 어찌 남의 병(病)을 구하겠느냐?"
학승이 말했다.
"그러하시면 학인이 의지할 곳이 없어지는 것 아닙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의지하려면 땅을 밟아서고, 의지하지 않으려면 동서를 자네 맘대로 다니게."

問 朗月當空 未審室中事如何 師云 老僧自出家不曾作活計 學云 如麽卽和尙不爲今時也 師云 自疾不能救 焉能救諸疾 學云 爭奈學人無依何 師云 依卽踏著地 不依卽一任東西

낭월당공(朗月當空)은 구름 한 점 없는 밤하늘에 보름달이 밝게 떠있는 상태를 말한다. 원래 화두가 성성하게 들리는 경계를 말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마음이 훤하게 밝아진 상태를 말한다. 즉, 깨달음을 얻어서 일점 망상도 없고 잡념도 없는 밝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바로 조주 선사와 같은 해맑은 사람의 마음 씀씀이는 어떠한가 물은 것이다.

이에 대하여 조주 스님은 출가한 이래, 깨달음을 얻은 이래, 앞으로 어떻게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계획한 일 같은 것은 해보지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또 '자기 병을 고치지 못하는데 어찌 남의 병을 구한단 말이냐'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조주 스님은 백여 세나 되는 관음원의 방장이고 남전 스님에게서 분명 깨달음을 얻은 선지식이다. 그러나 깨달음을 얻어도 아직 부처의 경지와 같아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럼없이 밝힌 대목이다. 물론 겸손의 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이 말은 솔직한 표현이기도 하고 조주 스님의 선적 사상을 그대로 내 비춘 대목이다.

조주 스님은 그동안 본 <조주록>에서 여러 차례 말했듯이 전통 돈오(頓悟) 사상을 주장하는 선승이다. 당시 임제 스님과 함께 중생이 원래 부처라는 사상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고, 부처가 되려고 수행하는 자들을 신랄히 비판하였다. 육조 혜능스님이 <육조단경>에서 말하였듯이 중생이 스스로 부처임을 즉시 자각하고 곧바로 부처의 행을 수행하는 것에 적극 찬성한 것이다.

따라서 저 앞에 나온 문답에서도 조주 스님은 스스로 아직도 “점검한다”하였고, 한 객승에게 “수행해야해”라고 하였다. 현재 여기서도 조주 선사가 “자기 병(病)을 구할 수 없는데 어찌 남의 병(病)을 구하겠느냐?”고 한 말은 평생 부처의 길을 가려고 노력할 뿐이지, 경지가 부처와 같지는 않다는 것을 그대로 드러낸 내용이다. 사원의 방장이 이렇게 말하기가 쉽지 않는 것인데도 조주 스님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었다. 있는 대로 말하는 것이 부끄럽거나 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또한 스스로 부처라는 당당한 자세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조주 스님은 또 가사 밑의 일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것'이라고 하였다. 오늘날 총림의 방장이 곰곰이 되새겨 보아야 할 대목이다. 스스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방장은 두고두고 역사의 혹독한 평가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문답 말미에서도 조주 스님은 그 특유의 돈오 사상을 그대로 드러내었다. 스스로 부처이고 완벽한데 도대체 누구를 의지하겠다는 것이냐고 학승에게 일갈을 던진 것이다.



無不禪院 禪院長 石雨
(cafe.daum.net/mubulsunwon)

 

 

 

 

 

 

 

 

출처 : 무불선원
글쓴이 : 무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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