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선사 소고
선(禪)의 대중화를 위해서는 선서를 쉬운 말로 전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할 것이다. 그런데 선서 해설은 한문을 번역하는 일 외에도 선구 한마디 한마디에는 항상 선의 본질이 밑바탕에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언어로 전달하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선에 대하여 전혀 아는 바가 없는 본 납자가 현대불교의 조주록 선해 연재 제의에 선뜻 응하고 나니, 선의 대중화에 기여한다는 포부만 앞세웠을 뿐 공연히 잎과 가지만 소개하고 말지 않을까하는 두려움이 있다. 연재 도중에 강호제현의 아낌없는 질책을 보내주신다면 미더운 가운데 한결 나아진 선해(禪解)가 될 것이라 기대하면서 붓을 드는 바이다. 연재에 인용될 판본은 고존숙어록 중에 있는『조주진제선사어록』이다.
조주 선사는 후당시대(778~897)에 임제 선사와 함께 활동하였던 대표적 선승이다. 조주 스님은 어린 사미승으로 본사(本師)와 함께 남전 스님을 예방한 후 남전 스님을 법사로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남전 스님과 조주 스님이 만나는 장면을 기록한『조주록』행장을 보면 남전 스님은 비스듬히 누워서 다음과 같이 사미와 첫 대담을 시작하였다.
남전 “어디에서 왔는가?”
사미 “서상원(瑞象院)에서 왔습니다.”
남전 “그래, 서상(瑞象)은 보았는가?”
사미 “서상은 보지 못하였습니다만 누워 있는 부처님은 봅니다.”
그러자, 남전은 일어나 앉으면서 물었다.
남전 “너는 주인이 있는 사미인가, 아니면 주인이 없는 사미인가?”
사미 “주인이 있습니다.”
남전 “너의 주인은 어떤 분인가?”
사미 “봄이라곤 하지만 아직 춥습니다. 화상의 존체에 만복이 깃들기를 바라옵니다.”
그러자, 남전 스님은 유나를 불러서 말하였다.
남전 “이 사미승을 특별석에 앉혀라.”
남전 스님은 첫 대면에서부터 조주를 예사롭지 않게 보았다. 조주 스님은 어릴 때부터 똑똑함과 당찬 기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흔히 사미들은 큰 스님을 친견하면 주눅이 들어 제대로 말도 못할 상황인데, 어린 사미는 남전 스님을 보고 누워있는 부처라고 당당히 호칭한 것이다.
선불교는 사람은 누구나 원래부터 부처라는 것을 전제하고 수행하는 불교이다. 때문에 어린 사미의 이 발언에 남전 스님은 누워 있다가 벌떡 일어나게 한 사건이 되었다. 그리고 곧 네가 주인이 있느냐 없느냐 물으니, 사미는 서슴없이 주인이 있다고 대답하였고, 그가 누구인가라는 반문에 남전 스님 당신이 바로 제 주인입니다 라는 뜻으로 ‘존체에 만복이 깃들기를… ’하고 절을 올린 것이다. 사미가 남전을 스승으로 모시고 싶다는 표현을 그야말로 기특하게 한 것이다. 사미의 이 대답은 마치 중견 선객들의 선문답처럼 몇 단계 건너 뛴 것이라, 남전 스님은 조주를 특별하게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장래에 한 시대를 풍미할 인재가 찾아왔음을 알아 본 것이다.
조주 스님은 60세부터 천하를 다니면서 행각하기 시작하였다. 그후 80세가 되어서야 조주(趙州) 동쪽에 있는 관음원의 주지로 정착하였다. 이후 118세까지 관음원 낡은 절에 머물면서 사람들이 와서 불법을 물으면 대답하고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조용히 시간을 보내는 자칭 촌 늙은이(田庫奴)로 살았다. 일을 벌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품이었고, 머리는 명석하여 남보다 두세 단계 앞서서 말하였기 때문에 조주 선사의 한 마디 한 마디 선구(禪句)는 그동안 다른 선사들에게 보이지 않았던 독특함과 깊은 맛이 있었다.
조주 선사는 주로 말 몇 마디로 질문의 정곡을 찔러 사람을 깨닫게 하는 방법으로 교화에 임하였다. 그래서 조주선사의 접화방법을 구순피선(口脣皮禪)이라고 한다. 그러나 말로서 사람을 깨닫게 하지만 그 의미에 있어서는 그 어떤 선사의 격외구(格外句) 못지않은 깊고 은밀한 뜻이 들어있어 당대의 선사들조차도 감탄을 자아내게 하였다.
『조주록』행장 중에 당시 설봉 스님이 혀를 내두르게 하였던 선문답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루는 남쪽에서 어떤 스님이 조주를 찾아와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다.
설봉(雪峰)에게 묻기를,
객승 “예전부터 있던 차디찬 샘물에 적셔졌을 때는 어떠합니까?”
설봉 “눈을 크게 떠보아도 밑이 보이지 않는다.”
객승 “그 물을 마시는 자는 어떠합니까?”
설봉 “입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라고 하였습니다하고 말하자, 조주 스님이 이것을 듣고,
조주 “입으로 들어가지 않고 콧구멍으로 들어간다.”
라고 말하였다. 그 스님이 곧바로 조주 스님에게 물었다.
객승 “예전부터 있던 차디 찬 샘물에 적셔졌을 때는 어떠합니까?”
조주 “쓰다.”
객승 “그 물을 마시는 자는 어떠합니까?”
조주 “죽는다.”
나중에 설봉 스님이 이 말을 전해 듣고는 “고불(古佛)이야, 고불(古佛)!” 하면서 다시는 이 물음에 대답하지 않기로 하였다.
예전부터 있던 차디찬 샘물은 본질을 표현한 것이다. 조주 스님은 그 물을 마시면 죽는다하였으니 명쾌하고도 심오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 그러하니 당대의 선사들조차도 조주 선사의 선구(禪句)에는 더 이상 다른 견해를 붙이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조주 선사의 입에서 ‘조주 무자’, ‘뜰 앞의 잣나무’, ‘판치생모’ 등의 유명한 화두가 나왔고, 이것은 오늘날까지도 선객들이 가장 많이 참구하는 화두가 되었다.
조주선사는『조주록』에서 먼저 이치를 탐구하고 20년, 30년을 좌선하면서 시간을 보내라고 하였고, 본인 역시 남전 스님 휘하에서 돈오(頓悟)를 얻고도 110세의 노년에도 아직 수행한다하였으므로, 선문의 전통 수행법인 깨닫고 보림하는 돈오보림(頓悟補任)의 사상을 보였다. 조주 스님은 부러진 선상에다 장작을 대어 끈으로 매어 쓸 정도로 청빈하게 살다가 120세에 앉아서 열반에 들었다. 죽은 뒤에 절대 사리를 줍지 못하게 당부하였다.
조주 스님과 임제 스님은 동시대의 선승이나 그 가풍은 완연히 다르다. 임제 스님이 방, 할, 선구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면서 교화에 임하였지만, 조주 스님은 주로 대담을 통하여 사람을 깨닫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런데『조주록』에서 빈번하게 눈에 띄는 것은 ‘중생이 부처’, ‘마음이 부처’라는 내용이다. 이것은 임제 스님도 『임제록』에서 수 없이 강조하였던 바이므로 이 점에 있어서 두 선사의 기본 사상은 같다.
선불교는 ‘마음이 부처’라는 사실을 즉시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돈오(頓悟)이고 돈수(頓修)이다. 더 이상 부처가 되려고 닦는 것은 없다. 다만 앞으로 부처의 행을 행하면 될 뿐이다. 이것은 본 납자의 말이 아니고『육조단경』에서 나온 말이다. 앞으로 조주록 선해를 연재하면서 여러 번 강조하겠지만, 이것을 완전히 깨닫지 못하고는 그 어떤 선문답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러하니 지금 즉시 마음이 부처임을 실제적인 것으로 인식하라.
無不禪院 禪院長 石雨
(cafe.daum.net/mubulsu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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