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본래지 (본래면목)

희명화 2013. 6. 19. 20:13

본래지당本來知堂 24시간

 

 

출가사문出家沙門으로서 수십 년 동안이나

한결같이 쉴 새 없이 갈고 닦은

본래지本來知의 본분本分, 본래지의 위신력威神力

밖으로 포교布敎하기 위해서

거듭거듭 쓰고 또 쓰는

본래지- 극비極秘의 원고, 신비神秘의 원고

쓸 때마다 새 맛이고 새 기분이고 새 건강이니…….

 

사람들은 누구나 다

남녀노소男女老少 모두 모두는

각각 자기들의 가는 길이 있어야 한다.

가고 가는 길이 있어야 한다.

가고 또 가는 길이 있어야 한다.

꼭 있어야 한다.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된다.

본래지本來知로 가는 길이 있어야 한다.

 

본래지本來知로 가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외도外道의 길이다.

어리석은 길이다.

우상의 길이다.

 

본래지本來知로 가는 작업作業이 있어야 한다.

일이 있어야 한다.

본래지本來知로 가는 길이 곧 천상락天上樂이다.

본래지本來知로 가는 일은 세세생생世世生生의 일이다.

영원永遠이, 영원永遠이 있는 일이다.

길이길이 하고 또 해야 할 일이다.

 

해야 할 일이 없으면 고독이다. 우울이다.

실패자와 같다. 낙오자落伍者이다.

사람의 전부全部는 일이다.

일은 생기生起이다. 일은 맛이다. 일은 일미一味이다.

일은 미래未來이다. 일은 밝고 밝은 미래未來이다.

창창한 미래未來이다. 당당한 미래未來이다.

만고萬古의 자랑스러운 미래未來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기 미래의 밝은 길을 다듬고 다듬어야 한다.

 

출가사문出家沙門은 본래지本來知의 길을

쉬지 않고 가기 위해서

본래지本來知의 일을 하기 위해서

새벽 2시 반에 기상한다.

달디 단 단잠에서 기상한다.

 

본래지本來知의 길을 가기 위한 첫째 준비는

를 갖추기 위한 얼굴 세수이다.

기쁘고 기쁜 기쁨의 세수이다.

본래지本來知의 길을 가기 위한 세수이기 때문에

천번만번 세수를 한다.

하고 또 해도 싫지 않은 세수이다.

본래지本來知의 길을 가기 위한

얼굴 세수 준비작업이 없다면,

본래本來로 가고 가는 길이 내게 없다면

산승山僧은 늦도록 자고 또 잘 것으로…….

 

자고 또 자는 늙은이가 된다면

세상에 아무 쓸모없는 늙은이

가지가지 병만 가지고 있는 늙은이

병만 짊어지고 있는 늙은이

고독한 늙은이

허전하고 허전한 늙은이

쓸쓸한 늙은이로 살 수밖에 없다.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 생각 없이

허송세월만 보낸 늙은이

세수歲數만 많은 늙은이

할 일 없는 늙은이

해야 할 일을 못하는 늙은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는 늙은이

늙고 늙은 노형老形의 형체形體

세상사람 어느 누구인들 보기 좋아하겠는가!

 

가고 가는 길이 있어야 하고

할 일 있는 늙은이가

꼭 되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信念으로

자기성찰自己省察 자기제도自己濟度

바쁘고 바쁜 일꾼이 되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信念으로, 한결같은 발원發願으로

오늘도 새벽 2시 반에 기상한다.

본래지本來知로 가기위한 기상이다.

 

본래지本來知의 길은 가도 가도 끝이 없다.

영원히 끝이 없다.

가고 또 가는 것이 답이다.

 

본래지本來知로 가는 길은 넓고도 넓은 길이다.

아무 후회 없는 길이다.

아무 상처 없는 길이다.

항상 밝고 밝은 길이다.

시원하고 시원한 길이다.

언제나 따뜻한 길이다.

늘 쾌적한 길이다.

지겹지 않은 길이다.

세세생생世世生生 평화롭고 평화로운 길이다.

 

본래지本來知 마음으로 가는 길의 공덕을 재론해본다면

본래지本來知 마음으로 가는 길은

고기들이 깊고 깊은 강을 만나서

물속에서 활개를 치며

자기들 마음껏 헤엄치며 놀고 있음과 같고,

뭇 새들이 허공을 만나서

허공에서 마음껏 날개 치고 날개 치는 것과 같고,

호랑이들이 깊은 산중에서

호랑이의 기상氣像을 아무 군색함 없이

펼치며 놀고 있음과 같다 하겠다.

 

새벽이슬처럼 새 맛으로 가는 길이다.

새벽이슬처럼 영롱玲瓏한 길이다.

일체중생 모두가

‘높고 낮고, 잘나고 못나고’에 아무 관계없이

아무 상관없이 대발심자大發心者만 되면

누구든지,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본래지本來知의 마음으로 가고 갈 길이 있으니

태평성대太平聖代가 아닐 수 없다.

 

본래지本來知의 마음은 ‘어느 때부터’가 아니고

‘하늘땅 이전 본래本來부터’이니…….

그러나 본래지本來知의 마음은

모양이 없고, 아무 형상이 없고, 아무 색깔이 없지만

무슨 연을 만나든 만나기만 하면

즉각 반응하여 가지가지 형체形體로 나타난다.

고정된 것도 아니고 굳어져 없어짐도 아니다.

언제든 연을 만나면 자유자재自由自在하게

반응反應할 줄 아는 만능萬能의 없음이다.

 

적적寂寂하여 고요하고 고요함이 본법本法이다.

지극한 신심信心, 한결같은 신심信心,

마땅히 믿어지는 마음인 당신當信,

믿어지는 마음이 아니고는

어떤 감도 잡을 수 없다.

마땅히 믿어지는 감발심感發心으로

세상을 가득하게 함이다.

 

의상조사義湘祖師 법성게法性偈 법문,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법성은 원융하여 둘 없는 모양

   본래의 그 바탕은 적멸하여라.”

 

본래本來부터인 법의 성품性品

자유자재自由自在하고 원만圓滿하여

어떤 상도 상이 없음이고 본바탕은 적멸하지만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이라,

꽁꽁 얼어붙은 자성自性이 아니기 때문에

을 따라서는 삼라만상森羅萬象 연기법緣起法

두루 펼쳐지는 현실이라는 법문이니

현재 삼라만상은 연기법으로 생하고 멸함이다.

연기법緣起法 외 다른 어떤 법도 아니다.

 

본래지本來知의 마음법, 본래지의 실체법實體法

일체중생들의 종교처宗敎處이다.

신앙처信仰處이다. 의지처依支處이다.

안식처安息處이다. 휴식처休息處이다.

기도처祈禱處이다. 불공처佛供處이다.

 

본래지本來知의 마음 본분을 빼놓고

어느 신이 주관主管하는 종교는 종교가 아니다.

어떤 신이 주재主宰하는 종교처宗敎處는,

중생들을 구제救濟하는 신은 없다.

본래지本來知 가 곧 신이고,

이 바로 본래지本來知이다. 본래지本來知의 마음이다.

‘신따로, 본래지本來知마음 따로’의 이원론이 아니다.

이원론二元論은 미신이고, 우상 중의 우상이다.

 

만고萬古의 불변不變, 불멸不滅 본래지本來知의 마음이지만

본래지本來知마음이 어느 때 어느 곳에 있다고

점을 찍으면 상에 떨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없다고 단정하면

허무주의虛無主義에 떨어지는 크고 큰 병자病者가 되고

어리석은 큰 허물자가 된다.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이 바로 본래지本來知의 법이다.

 

본래지本來知 자성불自性佛을 참구參究하는 공부자工夫者

수행자修行者가 많고 많아야 한다.

자성불自性佛 참구공부參究工夫 수행자修行者

‘신따로, 마음 따로’라는 이원론의

무지無知의 말을 하지 않는다.

본래지本來知 마음이 신이고,

이 바로 본래지本來知마음이라는

일원론一元論의 확실한 신자信者가 된다.

 

정법正法과 사법邪法을 바로 판단하는 지혜자는

본래지本來知 마음을 간절히 참구하는 공부자工夫者

수행자修行者 대중들이지 다른 대중이 아니다.

과 사를 바로 판단하지 못하는

큰 병폐인 우둔愚鈍은 인류역사를 통해

뿌리뽑기 어렵고 어렵다 하겠다.

 

본래지本來知 자성불自性佛을 참구參究하는

태양과 같은 대지혜大智慧

인류 역사에 언제나 큰 서광瑞光, 상서로운 빛이다.

과 사를 바로 판단하는 위신력은

본래지本來知 마음 참구라고 거듭 주장한다.

 

본래지本來知는 ‘본래本來부터’이고

지혜지智慧智는 ‘어느 때부터’이다.

본래지本來知는 일체중생의 높고 낮고, 잘나고 못나고,

크고 작고에 관계없이 하나이고 하나이지만

지혜지智慧智는 일체중생들마다 하나가 아니고

다 각각 다르다.

왜냐하면 본래부터가 아니고

어느 때부터 자기들 나름대로

지혜를 터득할 수 있는 정진 노력에 의해서

지혜를 터득하고 터득한 지혜가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지혜지智慧智가 태양과 같이 양명陽明하고

인류역사에 큰 공헌을 했다 해도

일체중생들에게는 단지 삶의 편리便利,

편리, 그 이상은 아니어서

중생들의 안식처安息處는 될 수 없다.

종교처宗敎處가 아니다. 신앙처信仰處가 아니다.

행복처幸福處가 못된다.

편리便利 이상은 될 수 없다.

본래지本來知만이 영원히 영원히

중생들의 종교처宗敎處이고, 안식처安息處이고,

의지처依支處이고, 휴식처休息處이고

건강처健康處이고, 복지 중의 복지처福祉處라고

거듭 재론한다.

 

본래지本來知가 나의 것이 확실하지만

아무리 태초부터 나의 것,

나의 본래지, 일체중생 우리들의 본래지라 해도

본래지의 마음을 한결같이 믿고 섬기고,

갈고 닦고, 수행한 지혜복덕이 없으면

나 스스로, 우리들 스스로

나의 본래지 마음을, 본래지 후광後光을 등지고

스스로 경시輕視하고 불신不信하는 무지無知가 된다.

 

우리들 모두 모두가 앞으로 무궁 무궁토록

본래지本來知 자성불自性佛을 참구參究하는

공부자가 되기를 발원하며

본래지 마음을 믿고 섬기고 섬기는

한결같은 신심信心

자기의 동반자同伴者가 되고

대발심大發心

자기의 동반자가 되도록

발원하고 또 발원합시다.

 

 

 

金井山人 佛國正觀 心

불기 2557(2013). 6.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