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앞날 열어준 스승이시여 속히 오시어 지혜의 등 밝혀주소서”
- 조계종, 19일 성수 대종사 다비식 엄수
- 2012.04.23 16:23 입력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발행호수 : 1143 호 / 발행일 : 2012-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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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활산당 성수 대종사 임종게 전문.
臨 終 偈
번갯불이 반석위에 번쩍하니
우주와 법계가 둘이 아니로다
다른 것 다 버리고 보물을 찾아라!
보물을 찾아서
알고 살면 잘 사는 것이요
모르고 살아도 그만이니
우주만물이 모두 열반이로다
시방세계가 눈을 깜박이는 순간
다 보아도 모자라는데
무엇이 그리 바쁜가!
눈을 떠도 그것이고 눈을 감아도 그것인데
볼 때는 내 것이고 안 볼 때는 남의 것이다
그러나 욕심낸다면 내 것이 아니고
남의 것이 될 것이다.
<황대선원을 찾아서>
지난 주에 며칠동안 지리산 자락을 돌고 왔습니다.
인연있는 도반과 함께 무작정 길을 나섰답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자이기에 어느 사찰을 찾아가도
시간만 잘 맞추면, 공양도 할 수 있고, 숙박도 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동화사와 파계사 그리고 성철스님이 계셨던 성전암도 잠시 들렀습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곳이 없다는 옛시조가 문득 떠올랐습니다.
사람은 죽어도 명성과 업적은 남아 있기에 옛 어른들의 발자취라도 밟고 싶었습니다.
황대선원 성수 큰스님을 찾아 뵈었더니, 무척 쇠약해져 계셨습니다.
스님께서 퇴원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마침 잘 됐다는 생각에 선원에서 며칠 쉬고 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스님의 병세는 심각해 보였습니다.
지난 여름에 스님을 뵐 적만해도 정정 하셨는데, 구순의 나이는 어쩔 수가 없는가 봅니다.
가만히 누워 계신 큰스님의 법체를 바라보고 있자니 홀연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스님께서는 우리 일행의 손을 일일히 꼬옥 잡아 주셨습니다.
스님의 야윈 손에서 강인함이 제 손으로 전해져 왔고, 가만히 쳐다보고 계시는 스님의 눈길에서 절절함이 배어 있었습니다.
마치 '육신의 껍대기에 집착하지 마라! 저기, 저, 산을 보아라!...' 하시는듯 보였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스님을 향해 우리는 합장을 올리고 방을 나왔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스님의 우렁차게 울리는 호통소리가 귓가를 맴돌고 있습니다.
" 눈 떠봐! 한번 해보란 말이야! ...."
생전에 존경했던, 성철 큰스님과 서암 큰스님과 종성스님과.... 그 분들은 어디로 가셨을까?
업연을 모두 끊어 버리고, 부처님처럼 법신상주 하고 계신것일까?
고불 조사님들이여! 어디로 가셨나이까?..............
품넓은 지리산 자락을 돌아서 벽송사에 들어서니, 역시 천년고찰의 장엄함이 그대로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월암스님은 벽송사를 떠나셨다고 해서 아쉽게도 친견할 수 없었답니다.
서울 안국선원의 후원으로 새로 불사를 했다는 축대와 요사채가 도량의 웅장함을 더해주고 있었습니다.
선방안으로 들어가 보니 언제 붙여 놓았는지 모를 용상방이 벽에 붙여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도 선방에 가만히 앉아 입정에 들어 보았습니다.
수 백년 동안에 이곳 벽송사 선방을 스치고 지나간 옛 선사들의 체취라도 느낄 수 있을까 해서 말입니다.^^
차를 타고 5분쯤 거리에 있는 서암사를 찾았습니다.
서암사에는 동굴속에 부처님이 모셔져 있는데, 동굴속 구석 구석을 돌조각을 해서 불상을 조성해 놓았더군요. 너무나 황홀하고 장엄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섬세하게 부처님 세상을 조각해 놓은 곳이 있었는지 몰랐답니다. 천상세계, 극락세계, 지옥세계... 대단한 것 같았습니다.
이곳 서암사에서는 '대방광불화엄경'을 염송하시더군요.
저도 오랫만에 큰소리로 따라 부르면서 저녁예불도 모시고 새벽예불도 모시고 왔습니다.
주지 원응스님께서는 38년동안 사경을 하셨는데, 화엄경 80권, 법화경, 금강경을 모두 금니사경을 해놓으셨더군요. 서예도 잘 쓰시고, 경전 사경을 하시면서 삼매에 들어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변상도로 나타내 놓으시기도 했습니다.
스님의 사경을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에 들어가서 참관을 하면서 스님의 높은 수행력에 탐복하고 말았습니다.
세상 곳곳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있는 숨은 도인들이 많이 계신 것 같습니다.
산자락을 돌면서 아주 오랫만에 화엄도량인 실상사에도 다녀 왔습니다.
실상사에는 청렴 결백하시고 생활법문을 하고 계시는 도법스님이 계신 곳이기에 항상 그리운 곳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오래전 부터, 나이가 들면 실상사 부근에 가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곳 땅값도 많이 올랐고, 농사짓는다는 사실이 얼마나 어려운줄을 주말농장 1년간 해보면서 절감하게 되었기에, 이제는 감히 농사짓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정도량에서 마음을 비우고 또 비우면서 새롭게 발심하고 왔습니다.
사람 몸 받고 태어났으니, 사는 날까지 사람답게 살고 가겠다고 말입니다...
서울로 올라 오는 길에 대전에 들러 귀한 보살도반을 또 만났답니다.
보살님과 거사님을 만나 융숭한 저녁대접을 잘 받고나서, 하루밤만 보살님을 제가 빌려 가겠다고 청했답니다. ㅎㅎ
거사님께서는 흔쾌히 답변을 하시고는 대전에서 제일 좋다는 찜질방 앞에 저희들을 내려 놓아 주셨답니다.
우리는 밤새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긴밤을 짧게 보냈습니다.
아침이 되어 찜질방을 나와서 간단하게 김밥과 떡국으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대전보살님이 공부하러 다니신다는 세등선원으로 우리 일행을 데리고 갔습니다.
비구니 도량이라서 인지 경내가 아담하고 청갈해 보였습니다. 도시 사찰치고는 도량이 꽤 넓은 것 같았습니다.
사시예불을 올리면서 간절하게 기도를 올렸습니다.
" 가내 길상 하여지이다..... 부처님이시여! 만 중생들이 모두 성불할 수 있도록 가피를 내려 주옵소서...."
이렇게 4박 5일간의 저의 만행은 끝이 났습니다.
세월은 무상하고, 해도 한바 없는 무정물.
어디엔들 티끌이 있으리오.
오직
허공은 끝이 없고
바닷속은 깊고 깊을 뿐이리라.
2012. 3. 19 희명화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