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삶의 지혜 -혜국스님-

희명화 2012. 7. 13. 00:21

    문:스님께서는 평생토록 참선정진에 몰두하셨고,
    불자들에게 참선수행을 할 것을 강조하십니다.
    염불, 간경, 참회 등 다른 공부를 통해서는 도를 이루기가
    불가능합니까?


    답:다른 공부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도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오히려 '참선만 된다'고 하는 것이야말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만약 대학교에 의대만 있고 법대나 공대가 없다면 이 대학은
    단과대학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양한 대학에 여러 학과
    들이 있을수록 온전한 종합대학교가 되듯이, '불교'라는
    엄청난 규모의 종합대학교에서 '참선만이 참된 해탈법'
    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불교를 단과대학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참선만이 최고'라고 주장하다보면
    아만의 병통만 커질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시한 공부방법의 기본 뜻을 잘 알고 정진을
    해나가면, 그 공부가 해탈법이 됩니다. 절을 예로 들어봅
    시다. 절은 내가 부처님께 올리는 것이 아닙니다. 고쳐지지
    않는 못된 성깔이나 감정을 땅바닥에 완전히 내려놓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함께 '참된 나'를
    떠받드는 것이 절입니다. 나의 감정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내 마음의 그릇을 넓히는 작업이 절이기 때문에, 절은 하면
    할수록 내 마음이 넓어지고 내가 겸손해집니다. 어찌 도와
    가까워지지 않겠습니까?

    실로 부처님을 보면서 절을 하다보면 어느 때 문득,
    "아, 저분이 이것을 가르쳤구나. 부처님, 고맙습니다."
    하게 됩니다. 이때가 되면 내가 내 부처에게 절을 한 것을
    알게 되고, 저 부처님이 내가 되어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절을 통하여 도를 이룰 수 있게 됩니다.

    비단 절 뿐이겠습니까? 경을 보고도 이룰 수 있고, 주력,
    염불, 참법(懺法), 자비보시 등 모든 불교공부를 통하여
    이룰 수 있습니다. 나아가 공자님의 법, 예수님의 법,
    노자의 법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법의
    근본으로 돌아가 닦는데 있습니다.



    문:세상이 시끄럽고 살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래서 보다 좋은 세상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범국민적으로 생각하고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답:참으로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중앙의
    이름 있는 일간지에서 신년특집으로 인터뷰를 하러 온 적이
    있습니다. 그 때 기자가 물었습니다.
    "스님, 세상이 왜 이렇게 시끄러워집니까?
    자꾸만 어려워지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당신하고 나 때문입니다."
    "왜 저 때문입니까?"
    " 이 사회에서 앞서가는 사람은 성직자, 법조인, 의사, 교수
    언론인 등입니다. 이들이 사회를 이끌어 갑니다.
    특히 우리나라 인구의 70%는 종교를 믿고 있는데, 이들을
    바른 길로 이끄는 사람은 성직자입니다. 또 언론인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삼아 바로 보고 바로 이해하도록 하는데
    앞장을 선 사람입니다. 성직자와 언론인만 잘 하면 이 세상
    이 바로 서고 좋아집니다. 그런데 이 세상이 시끄럽고 어지
    러우니, 이 자체가 성직자와 언론인이 제 갈 길을 가지 못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은 언론인이요 나는 성직자이니,
    어찌 우리의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은 남의 탓하기를 좋아합니다. 남 때문에 잘못되고,
    누구 때문에 세상이 어지럽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남의 탓을
    하면 할수록 세상은 부정적으로 보이고 추하게 보입니다.
    반대로 한 가정의 일도 자기 탓으로 돌릴 줄 알고, 언론인이
    언론인 탓, 성직자가 성직자 탓으로 돌릴 줄 알 때 이 세상은
    아름다워집니다.

    사실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고 누구 때문이라고 하게 되면,
    '나는 허수아비'라는 이야기 밖에 되지 않습니다. 모든 것
    은 '나' 때문입니다. 내가 바로 서 있으면 불행과 고난이
    접근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좋은 세상, 참으로 멋진 삶을 살고자 하면 '남의 탓'
    을 '내 탓'으로 돌리십시오. 내 탓으로 돌리면 집안도 달라
    지고 세상도 달라집니다. 가족의 구성원들은 이 집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내 탓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보면 시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권을 놓고 시위를
    합니다. 정치가는 정치가대로 세상을 바꾸어야 한다고 소리
    치고, 시위하는 이들도 누군가를 맹비난합니다. 그 때마다
    나는 묻습니다.
    "누구를 바꿀 건데? 어떻게 바꿀 건데?"

    모두들 하나같이 상대방을 바꾸겠다고 합니다. 나 자신을
    바꾸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상대방만 바꾸려고 합니다.
    서로가 팽팽하게 마주 서서 서로를 바꾸려고 하니 될 수가
    있습니까? 바꾸고자 하면 '나'부터 바꿔야 합니다.

    내 마음이 썩으면 세상이 오염되고 썩습니다. 내 마음이
    맑아지면 세상이 맑아지고 아름다워집니다. 남의 탓 하는
    오염된 마음으로 살지 말고, 내 탓을 하며 맑혀 가십시오.
    내 주위의 세상부터 차츰 아름다워집니다. 부디 내 중심을
    잡고, '나'를 향상하는 쪽으로 바꾸어 가시기 바랍니다.
    문:불자들 중에는 계율을 구속으로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참된 계율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답:계율은 부처님께서 자유를 찾는 길을 제시해 주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율이 우리를 구속하는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불살생(不殺生)! '살생하지 말라'
    는 계율 속에 담긴 부처님의 가르침을 예로 들겠습니다.

    21세기 인류의 가장 큰 문제는 환경오염이요, 이 환경오염은
    서양의 종교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
    께서 인간에게 자연을 마음대로 개발해도 된다는 인간상위
    개념을 심어주었으므로, 인간 중심의 개발로 인해 자연이 피폐
    해졌고, 그 결과 갖가지 자연재난이 지구를 휩쓸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양은 달랐습니다. 장독간에 물을 떠놓고 천지신명과
    자연을 받드는 자연상위개념을 따랐습니다. 더 나아가 불교의
    '살생하지 말라'는 계율은 벌 한마리, 나비 한 마리를 내 몸과
    같이 생각하여 같이 살아가자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 벌이나 나비들이 없어지면 꽃가루를
    옮겨주지 못하게 되고, 꽃가루를 옮기지 못하면 어떠한 과일도
    야채도 먹을 수가 없을뿐더러 종자마저 사라집니다.
    곧 벌과 나비들이 없어지면 우리의 후손들도 굶어죽게 되고,
    이 지구도 황폐해집니다.

    따라서 살생하지 말라는 이 계율을 잘 지키려면, 자연을 떠
    받들며 살아야 합니다. 자연을 떠받들 때 불살생은 저절로
    지켜집니다. 아니, 불살생이 아니라 일체를 살리는 계율이
    되는 것입니다.

    자연을 잘 섬기고 환경을 떠받들자! 이것이 불살생 계율의 참
    의미입니다. 우주, 자연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아서,
    우주 자연을 아끼고 살려가는 것, 이것이 계율의 참 뜻이요,
    이것을 실천하여 성취할 때 지계바라밀(持戒波羅密)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문:같은 맥락에서 보시(布施)에 대해서도 깨우침을
    주십시오.


    답:보시는 돈이나 물질을 베푸는 재시(財施)와 법문을
    일러주는 법시(法施)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 뜰 앞의
    나무를 보면서, "나무야 정말 고맙다. 너희가 있어 새들이
    오고, 나에게 새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 주는구나. 그리고
    나에게 쉴 수 있는 그늘과 신선한 공기도 주고 있다. 너희의
    덕을 보는 것이 정말 고마워서 앞으로도 나무를 심고 가꾸어
    갈 것이다."라고 하는 것도 보시입니다.

    자연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물을 얼마나 맑히고
    있는가? 자원을 얼마나 아끼고 있는가? 남에게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를 쓰며, 얼마나 남의 아픔을 들어주려 하고 있는가? 등 등
    생활 속의 하나하나를 점검하면서, 자연과 남을 돌아보면서
    고마워하고 축원하는 것 또한 큰 보시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문:생활속의 하나하나에 고마워하라고 하셨는데,
    세속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돈, 건강, 사랑, 자녀교육,
    대인관계 등입니다. 깨달은 마음자리에서 보면 이러한 것들이
    어떻게 보이는지요?


    답:소중하게, 더 소중하게 보입니다.
    흔히들 깨달음의 세계로 가면 돈이나 가족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설하는데, 이것은 한 면만을 보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전체를 보면 정말 더 소중하게 보입니다.


    문:어찌하여 돈이 더 소중해 보입니까?

    답:돈은 거름입니다. 돈이 없으면 나의 가족들이 잘
    살아가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나무를 돌구덩이에 심어
    놓고 그냥 자라라고 하면 제대로 성장을 합니까? 흙 속에 심은
    다음 거름을 주어야 쉽게 뿌리를 내리고 잘 자랄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흙이 되고, 돈이 거름이 되도록 하
    면 가족 모두가 참으로 잘 살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거름인 돈을 앞세우면 문제가 생깁니다.
    아이들과 대화도 하지 않고 인성(人性)교육을 시키지도 않으
    면서 돈으로 아이를 만족시키면 지나친 거름으로 말미암아
    나무를 죽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종종 이야기 합니다.
    "잔소리 많은 부모는 필요 없고, 돈과 친구가 있으면 된다"
    물론 일부 청소년들의 말이지만, 이 얼마나 슬픈 이야기입니까?
    이렇게 되면 돈이 사람을 잡아먹습니다. 돈이 형제간의 화목을
    깨뜨리고 부모 자식을 갈라놓습니다. 인성보다는 돈이 앞서기
    때문에 생겨나는 결과입니다.

    하지만 돈의 노예가 아닌, 돈을 거름으로 삼아 아이들을
    키우고 가정을 화목하게 만들면 그 돈은 진짜 좋은 돈이 되며,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써서 좋은 결실을 맺도록 하는 것을
    '깨달음'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돈이 악이 되지 않고 선이
    되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깨달음에서 오는 돈입니다.


    문:아이들을 키울 때 가장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답:요즈음의 부모들은 자녀의 공부, 성공, 출세에
    지나칠 만큼 정성을 쏟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이들의
    먹는 음식에 가장 많이 마음을 써야 한다고 봅니다.
    얼마전 외국에 나갔더니, 한 석학이 스위스에서 연구 발표한
    내용을 일러 주었습니다.

    "한국은 반드시 세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게끔 되어있다.
    그것은 전자산업이나 유전공학 등의 첨단과학에 의해서가
    아니다. 음식문화로 인해 세계에 두각을 나타내고, 그
    음식문화 때문에 전 세계가 한국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지구의 환경이 오염되어 사스, 구제역 등의 병이 번지게
    되면 누가 가장 먼저 피해를 입게 됩니까? 첫 번째는 육류를
    생으로 먹는 아프리카 쪽 사람들이고, 두번째는 조리한 육류
    를 많이 먹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발효식품이 가장 발달한 나라요, 이 발효
    식품이야말로 면역성을 키워주는 장수식품입니다. 콩을 발효
    시켜 만든 된장, 간장 등은 오래 먹을수록 약이 되고, 김치도
    땅 속에 잘만 묻으면 몇 년을 먹을 수 있는 훌륭한 발효식품
    입니다. 음식문화로 볼 때 마지막까지 빛을 낼 식품이 이 땅의
    발효음식인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의 음식문화는 차츰 햄버거, 피자, 샌드위치
    문화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된장찌개, 김치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서구화를 지향하고 조기 영어
    교육에 사활을 걸고 있는 부모덕분에 아이들의 음식문화도
    급격히 변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밖에 없는 자식들이 서양의
    음식에 그냥 젖어들고 있습니다.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부모와 햄버거를 좋아하는 자녀. 어찌
    이들 사이의 코드가 맞아들 수 있겠습니까?
    자녀들에게 이 땅의 뿌리를 알게 하려면 우리 전통음식에
    익숙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하려면 한국의 음식문화를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잘 통하는 부모, 자식, 잘 맞는 부모,
    자식이 되려면 음식으로 화합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된장찌개와 김치를 즐기는 아이라면 어머니와
    저절로 화합하고 깊은 정을 나눌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뿌리가 되는 이 땅의 음식문화부터 잘
    습득하게 한 다음, 공부, 성공, 출세 등의 일에 정성을 쏟는
    다면 더욱 효과가 클 것입니다.


    대담 및 정리
    손영희, 안춘상

    -월간 [법공양] 7월호중에서-        <정토회 카페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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