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대구시내에 나갔다. 평소에는 특별히 시내로 나갈 일이 없기에 동네에서 볼 일을 보거나 거의 집에서 소일하고 있다. 그런데 어제는 독서모임에서 8월에 읽을 책이 선정되었기에 그 책을 구입하려고 동네 서점에 문의해 보니 없다고 한다. 대형서점에 인터넷으로 택배신청을 해도 되겠지만, 그래도 책을 구입한다는 핑게거리가 생겼으니 이참에 시내에 있는 대형서점에 들러서 신간도 공짜로 뒤적여 보기도 하고, 지하철속의 사람풍경도 구경할겸 서둘러서 외출 준비를 했다.
거울 앞에 앉아서 오랫만에 거울을 보니 얼굴 피부가 엉망이였다. 며칠 전 손녀를 데리고 여름휴가를 다녀 왔었는데 그 날 썬크림을 얼굴에 잔뜩 발랐었지만 소용이 없었는지 새삼 거울을 바짝대고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니 어느새 시커멓게 그을리고 주금깨와 기미가 소복하게 덮혀 있었다. 순간 숨이 탁 막혔다.
작년만 해도 백화점 화장품 가게에 가면 주위에 여자들이 "어머, 피부가 희고 고우시네요? 무슨 크림을 바르셨어요?" 하곤 했는데, 역시 시골바람은 거세고 태양빛도 더욱 강해서 평소 맨얼굴로 다니던 내 얼굴에 상처가 생긴것 같다. 조금 씁쓸한 생각이 들었지만 금방 사라진다.
어떤 옷을 입을까 생각하다가 오래 전에 입었던 옷을 옷장에서 꺼냈다. 예전에는 유행을 따지고 누가 볼 것을 생각하며 옷을 입곤 했었는데 여기서는 만날 사람도 없고 또한 남을 의식할 필요가 없음을 느끼고 있으니 매사 편안하고 수월하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어서 긴팔 브라우스를 입고 유행이 지난 통바지를 입었다. 이 바지도 꽤나 비싼 가격으로 샀었는데 몇 번 입지도 못하고 세월만 갔다.
신발장을 열었다. 운동화는 산책할 때 신었던 것이라 조금은 더러워 보였다. 그래서 몇개 있는 샌달을 만지작거리며 신어 보다가 다시 운동화를 신었다. 편안한게 제일이지 뭐. 누가 나를 본다고... 그다지 마음에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냥 푹신하고 편안한 운동화를 신기로 했다. (밖에서 보니 그다지 더럽지도 않더구만..)
혼자서 시내에 갈 때는 차를 갖고 나가지 않는다. 지히철 보다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시내 버스를 타곤 한다. 그래야 시내구경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완전히 촌티가 난다. 사회적응을 하려면 스스로 자생력을 키워야 할테니까 말이다. 누군가 알려주는 이가 없으니 스스로 터득하고 발견하고 실천하는 길 밖에 없다.
남편은 더 더욱 시내 사정을 모른다. 집 근처에 근무지가 있으니 다람쥐 체바퀴 돌듯이 집과 직장만 왔다 갔다 하니 말이다. 이렇게 내가 현장을 다녀오고 이름 난 음식점 하나 라도 알게 되면 반드시 남편과 시식하러 간다. 객지에 와서 우리 부부의 결속력은 더욱 밀착된 것 같다. 함께 놀아 줄 사람이 없으니 우리 부부끼리 라도 놀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집을 나와서 버스 정류장에서 그쪽 방향의 버스를 한참 기다렸다. 시골버스는 자주 오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지루하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이것도 나의 인욕바라밀을 증장 시키는 한 과정 이라고 생각하면 금방 시간이 흐른다.
내가 가려고 생각한 곳은 교보문고(대구역) 였는데 (교보문고 회원이라서 마일리지도 쌓여 있기에 사용하려고 했음) 버스하차를 잘못해서(한 정거를 먼저 내림) 근처에 있는 영풍문고(반월당)를 가게 되었다. (만약에 내가 구입하려는 책이 영풍에 없으면 다시 교보로 가려고 했으며, 마일리지는 다음에 사용하면 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냥 영풍문고의 문을 활짝 열고 들어 갔다.)
매장에 들어서니, 대구역 부근에 있는 교보문고 보다 훨씬 매장도 넓고 편안해 보였다. 언젠가 교보에 갔더니 너무 비좁고 답답해서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없었는데 의외로 이곳은 위치도 좋고 매장 분위기도 환해서 기분이 좋았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책들을 보니 너무 행복했다. 집에서 나올 때 갖었던 옷차림과 얼굴의 잡티 그리고 신발의 선택... 등등 의 하잘것 없었던 생각들은 어느새 시원하게 날려 보냈다. 그저 좋다!
욕심껏 이 책, 저 책을 골라 잡고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곳은 책읽기에도 아주 편하게 의자가 잘 배치 되어 있었다. 고마운 사장님... 부자 되세요!
평소 읽고 싶었던 신간들을 한장 한장 펼치면서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서너시간을 보내고 왔다. 그리고 내가 구입 하려던 책은 샀고, 영풍에 새로운 회원카드를 만들었다. 내가 '즐겨찾기' 할 곳이 하나 더 늘었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뻤다. 오늘도 이렇게 나를 사랑하며 보낸 것 같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바로 나 자신임을 스스로 생각해 본다.
그러기에 타인을 사랑할 수 있고 존경할 수 있는 것일테니까...
모두 모두 나와 남이 하나라는 것을 생각해 보며 서로서로 사랑하며 삽시다.
오늘도 좋은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