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들었던 유행가 가사말 속에서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야~ 잘난 사람 잘난대로 살고, 못난 사람 못난대로 사네~~' 라든지, '타타타~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알겠느냐~~' 라는 노랫말이 종종 입안에서 맴돌곤 한다. 사실 나는 음악을 별로 듣지 않고 살고 있다. 그렇다고 음악을 싫어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예전에는 클래식을 엄청 좋아했고 지금도 기회가 되면 언제든지 음악회도 가기도 한다.
집 주위에서 들려 오는 자동차 소음과 자연의 풀벌레 노랫소리만으로도 내 귀는 항상 소리속에 묻혀있다. 그렇다고 시끄럽다고 생각한다거나 특별히 즐겁다고 생각한바는 없다. 문득 커다랗게 울리고 지나가는 사이렌 소리가 들려오면 부리나케 창밖을 내다보며 어디에서 불이 났나? 아님은 누군가 아파서 구급차가 저렇게 달려가는가? 하곤 잠시 눈길을 가져갈 뿐, 별다른 생각없이 큰소리가 울리고 사라진 것에 대하여 금새 잊어버린곤 한다.
가끔 걷는 나의 산책길에서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을 듣게 되면 저절로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그리곤 새들이 있는 곳을 향하여 가만히 서서 바라본다. 어느 날은 새들과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언어는 달라도 느낌(텔레파시?)과 행동에서 마음이 통하고 있음을 직감한다. 역시 꽃들도 마찬가지다. 키 작은 들풀들 곁에 조용히 앉아 있으면 들떴던 마음이 조금씩 차분히 가라앉는다. 그리곤 나 역시 점점 작은 풀꽃이 되어 버린다. 하늘은 넓고 바람은 서늘하게 불어 온다. 풀잎만이 지니고 있는 풀내음이 머리속에 잠긴다.
그 순간 아무런 생각도 욕심도 망상도 사라져버린다. 그냥 이대로가 전부인듯 환희심으로 가득해진다.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음직한 이런 일상들을 나는 자주 느끼고 즐기고 있을 뿐 이다.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오온의 활용), 즐기는 순간이니까......
불자들에게 가장 친근한 관세음보살님이 계신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 또는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 이라고 명칭하고 있다. 천수천안 관세음보살님(千手千眼觀世音菩薩)은 천개의 손과 천개의 눈을 가지고 세상사람들의 모든 소리를 듣고 위로해 주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신다는 보살님이시다. 고통받는 이들을 위하여 약병을 들고 계시면서 치료해 주시고 모든이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 관세음보살님의 보관에는 항상 어머니이신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 극락세계를 관장하고 계시는 분으로 우리를 극락세계로 인도해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죽어서만 극락을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동안 마음의 평화와 해탈을 구원하기 위하여 관세음보살님 앞에서 무릎을 굽고 간절하게 기도를 하는 것이다. 무릎을 굽는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만 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온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조복한다는 것이다. 바로 관세음보살님처럼 나 자신도 자신의 고통에서 벗어나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서원이 담겨있는 것이다. 간절함이야말로 이루지 못할 것이 없음을 기도를 해본 불자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타종교인도 간절한 기도에 대한 응답을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간절함은 우리의 본원력이고 우주의 힘인 것이다. 우리에게는 본래부터 우주를 움직일 만한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할 수 만 있다면, 지금 이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만은... 수행을 통하여 반드시 본원력의 실체를 증득해 보길 바란다. )
그러나 스스로의 힘을 과소평가 하거나 믿지를 못해서 시도조차 못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그래서 기도의 힘이 위대하다는 것은 간절한 기도를 해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오래전 어느 작은 단체에서 발행되는 월간지를 편집한 적이 있었다. 나는 글을 써본 적도 없었고, 편집 경험도, 사진을 찍는 기술도 없었다. 갑자기 내게 맡겨진 일을 두서없이 원력만 믿고 시작하게 되었다. 낯선 사람과 만나서 기사를 취재하고 나름대로 글을 작성해서 원고를 만들고 인쇄소를 쫓아다니면서 사진도 올려야만 했었다. 기가막히게도 나는 그런 모든 일들을 정신없이 하면서 제대로 하고 있었다. 실수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일에 도전한다는 강한 정신력을 다짐하면서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밑자락에 '나는 할 수 있다.' 라는 굳센 의지가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그런 용기와 힘이 어디서 생겨 나왔는지 잘 몰랐었다. 불교공부를 통하여 수행을 계속 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그 거룩한 힘은 원래 내 안에 깊이 잠재되어 있었고, 그 오랜 세월동안 내가 누구인지? 그 실체인 내 자신을 몰랐었다는 것이였다.
그 후 나는계속되는 기도와 깊은 수행을 통하여 나의 거룩한 힘을 알게 되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닥치는대로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삶과 수행은 봉사활동을 통하여 관음의 화신이 되어 거의 20년 세월을 보내게 된것 같다. 보수없는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왜그렇게 기쁘고 행복했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꿈 같은 시간이였다. 지금와서 되돌아 보면, 나에게 일을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 주셨던 큰스님과 주위의 도반들의 힘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생각해 본다. 인간은 인드라망의 연결고리 처럼 서로서로 연결되에 커라란 우주를 형성하고 있으면서 또한 각각의 빛을 발산하며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각자의 위대한 힘을 갖고 있지만. 세상속에서의 삶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기에 우리는 주위에 좋은 인연들을 많이 만들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인연들은 우선 나 스스로가 좋은 인연으로 되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
나는 너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서 너에게 빛이 되고 희망이 될 것인가?
세상살이는 어짜피 고통이 수반된다. 왜냐하면 각각의 생각과 의지대로 살아가려는 업력이 있기 때문이다. 업과 업이 부딪치며 살아가는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제행무상> <제법무아> <일체개고> 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이다. 암만 자기가 옳다고 주장을 해봐도 그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잠시 인연따라 왔을 뿐 사라지는 신기루와 같은 것이라고 집착하지 말라고 하신것이 아닌가. 또한 나 라고 주장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째각 째깍 돌아가는 시계를 가리키며 우리는 시계라고 부른다. 미국 영국 중국 일본에서는 무어라고 부르는가? 각각의 명칭으로 불리울 뿐 아니겠는가? 우리들의 이름도 단지 불려지기 위해서 편리상 지어졌을 뿐! 그 이름이 내 자신은 아닌 것이다. 나는 희명화다. 어떤 스님은 대명심이라고 다시 지어 주셨다. 또 어떤 스님은 대명화 라고 지어 주셨다. 과연 어떤 것이 진짜 나의 법명인 것인가? 그저 필요에 따라 집어 쓰면 되는 것이다. 이름은 이름일 뿐이고, 나의 실체는 무아(無我) 이기 때문이다.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마음속에 무엇이 나타나든 아무 문제가 없다. 가장 끔찍하고 잔인한 어떤 업상들이 내 앞에 나타나더라도 스스로 집착하지 않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 하지 않고, 옳고 그름에 대하여 판단하지 않고, 분별하지 않고, 움켜쥐지도 않는다면 마음속에 아무것도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도수행인 것이다. 수행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우리의 삶속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분별과 집착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바른 수행인 것이다. 이것을( 일어나는 현상들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는 힘을 기르고자) 하고자 우리는 절에 가서 또는 명상쎈타를 가서 배우고 익히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우리 안에는 가만히 자신을 바라 볼 수 있는 능력이 잠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처님께서 열반시에 우리에게 간곡하게 남기신 말씀을 다시 기억해 본다.
'자등명 법등명 하라. 스스로 섬이 되고 등불이 되어라, 진리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살아라'
얼마나 멋진 유훈이신가?
나는 날마다 새벽에 일어나면 벽을 바라보고 앉아서 삼귀의를 올린다.
나의 마음속에서는 온 우주에 충만하신 거룩하신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가득찬다.
거룩하신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
거룩하신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거룩하신 승가에 귀의 합니다.
언젠가 나도 역시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이 될 것을 발원하고 기도하며 정진하면서
날마다 날마다 행복한 나날을 만들어 가고자 서원해 본다.
오늘도
세상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기도해 본다.
나무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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