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저
" 늘 코를 흘리고 다녔다..."
작품 첫 장면에 나오는 대사다.
갑자기 훅 하고 들어온 짧은 문장이 순식간에 먼 과거를 회상하게 한다.
오래 전, 박완서님의 책을 읽으면서 글쓰기를 갈망했던 적이 있었다.
선생님은 군더더기 없이 단백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장으로 글을 쓰셨다.
나목, 휘청거리는 오후, 모독, 엄마의 말뚝... 수 많은 작품을 통해서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친근함을 느끼곤 했다.
싱아 ... 잎은 뽀쪽하고 가장자리에 물결모양의 톱니가 있으며 줄기와 잎에
신맛이 난다. 6~ 8월 산야에 1m 이상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
원추리과에 속하며 식용으로도 쓰인다. <네이버 검색>
이 책은 박완서님의 자전적 소설이며, 싱아를 통해 어린시절 산야를 뛰어 다니며
근심 걱정없이 풀을 따먹으며 놀았던 평화로웠던 어린시절의 그리움을 나타내고 있다.
글을 통해 작가의 섬세하고 강하고 고집스러운 품성이 드러나 있다.
책을 읽는 동안, 예전 나의 어린시절에 많이 들어봤던 용어들이 종종 표현 되어서
옛 생각에 혼자 빙긋이 웃음을 짓기도 했다.
(코찔찔이, 가슴에 손수건 차고 학교 다니기, 종종머리, 내리닫이 (원피스) 치마,
원족 (소풍), 산후기부정 방지용 , 무꾸리... )
이런 말들을 심심치 않게 사용 하셨던 나의 친정 어머니가 그리움으로 피어난다.
내 어머니께서는 개성 분 이셨는데 고향 이야기를 종종 들려주시곤 했었다. 그런데
작가가 작품 속에서 말하는 그 시절 개성지역의 풍경들을 상상하며 책을 읽다보니
문득 예전에 내 어머니께 들었던 개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1931년생이신 선생님은 경기도 개풍군 묵송리 박적골에서 자랐다고 한다.
박적골은 박씨 성이 모여 사는 양반 동네 였다. 그래서 작가는 부러움없이
여유롭고 안락한 어린시절을 보냈다가 아버지의 죽음과 서울로 상경후
어려운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어머니는 당당하게
자존감을 지키며 자식들의 교육에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생활력이 강했던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자라 온 작가도 역시 양반가의
당당함과 도도함을 생활속에서 알게 모르게 익혔던것 같다. 작가의 어릴 적
행동들이 평범해 보이지는 않다는. 어쩜... 모전여전 이랄까? (내 생각)
76. 비릿한 젓내를 풍기는 아카시아꽃은 간식으로 먹던 현저동 아이들을 보며
싱아를 떠올린다.....(가난한 동네 현저동...)
77. 아카시아꽃으로 상한 비위를 가라앉히는데는 그만일것 같았다...
(헛구역질이 나서 싱아 생각을 했다. 어린시절의 그리움)
현저동 46번지 418호... 벗어나고 싶었던 곳, 피난시절 도피처로 사용했던 곳,
대학 교수님의 집도 현저동...
살림살이 형편이 어려워서 기생들의 옷 바느질로 수입을 얻으면서도
엄마의 도도한 양반행세는 가히 놀라웠다. 사직동 손주 며느리뻘 되는 집에서
도움을 받으면서도 당당했고, 딸의 교동 초등학교 입학원서를 보면서도
엄마의 도도한 양반행세는 거침이 없었다.
그 당시 엄마의 태도를 작가는 아주 짜릿하게 표현하고 있다.
엄마는 입학통지서를 보면서 '엽서를 쉰 떡 보듯 제대로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라고 표현하고 있다. 사실 엄마는 초등학교 입학통지서가 안나올까봐 노심초사
하며 통지서가 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말이다.
'엄마의 교육관과 수신교과서에 일관되게 흐르는 천황에 대한 충성과 정직....'
' 너는 떨어진 물건을 보고도 못 본척 해라. 줍기는 왜 줍니?....' 등등
엄마의 이중적 사고를 딸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시절인연이 그랬으니까...
사랑하던 할아버지의 죽음, 오빠의 수박빨갱이식의 좌익활동 과 죽음...
그렇게 치열했던 압박의 일제시대가 끝나고, 어수선했던 학창시절을 지나면서
다시 전쟁이 시작된다. 작가의 피난시절의 이야기는 없이 그 시점에서
소설은 끝이난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어린시절의 풍요로움을 뒤로하고 어려운 시절을 겪어 오면서
무심하게 흘러버린 세월을 작가는 회상하듯 글을 쓰고 있다.
질곡의 시대를 참고 견디어 온 우리 국민들의 이야기를 작가의 가족사를 통해
잘 표현되고 있다. 같은 시기를 살아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늘도 좋은 작품을 만나서 행복한 시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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