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스크랩] 현정선원 대우 거사님 말씀

희명화 2013. 5. 20. 18:12


 


1. 모름지기 생사심(生死心)을 깨뜨려야 한다.



공부를 하되, 우선 첫째로 생사심(生死心, 살고 죽는 것이 실제인 줄 오인하고 집착하는 마음)을 깨뜨려야 한다. 이 세계(世界)와 몸과 마음이 다 거짓 인연이어서, 진실된 주재자(主宰者)가 없음을 필히 간파해야 한다.


만약 '본래 갖추어진 큰 진리'를 밝히지 못한다면 결코 생사심(生死心)을 깨뜨리지 못한다. 이미 '생사심'을 깨뜨리지 못한다면 죽음을 재촉하는 귀신이 생각 생각에 멈추지 않을 터이니, 어떻게 이를 물리칠 수 있겠는가?


오직 이 '일념'으로 <깨달음의 문>을 두드리는 기왓쪽을 삼되, 마치 치열한 화염 속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듯이,···한 걸음 어지러이 나아갈 수도 없고, 한 걸음 멈출 수도 없으며, 별달리 한 생각을 낼 수도 없고, 다른 사람의 구원을 바랄 수도 없으니, ··· 이에 이르러서는 다만 모름지기 사나운 불길도 돌보지 않고, 몸도 목숨도 돌보지 않고, 남의 구원도 바라지 않으며, 딴 생각도 내지 않고, 잠시 그치지도 않아야 한다. 오직 앞을 향해 곧장 나아가되, 훤칠하게 벗어나야 좋은 솜씨다.



2. 짐작하여 헤아려서는 끝내 이르르지 못한다



공부를 하되, 짐작하여 헤아리는 일이 가장 두려워할 바다.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구정거리면 도(道)와는 더욱 멀어져서, 미륵(彌勒)이 나실 때까지 공부한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만약 의문 덩어리가 활짝 일어난 사람이라면, 마치 은산철벽(銀山鐵壁) 속에 갇힌 사람이 오로지 활로(活路)를 찾으려고 애쓰듯 할 것인데, 만약 활로를 찾지 못하면 어찌 편안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이렇게 철저히 하여, 시절이 오기만 하면 자연히 끊어지는 소식이 있을 것이다.
 

일찍이 황벽(黃蘗) 선사가 송했다.


티끌 번뇌를 멀리 벗어남이 예사롭지 않으니

고삐를 바싹 잡고 한바탕 겨룰지라.

한 차례 혹한이 뼈에 사무치지 않았다면

코를 찌르는 매화 향기를 어찌 얻을 수 있으랴?


이 게송이 가장 친절하다. 만약 이와 같이 때때로 경책(警責)하면 공부가 자연히 늘어날 것이다.



3. 시끄러움을 피하여 고요함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큰 병이다



공부를 하되, 시끄러움을 피하여 고요함을 향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


두 눈을 감고 귀신굴 속에 앉아서 살아날 계책을 꾸미지 말아야 한다. 옛사람이 말하기를, "흑산(黑山, 지옥) 밑에서 썩은 물에 잠겼다" 하였으니, 어찌 구제할 수 있겠는가?


다만 경계를 반연(攀緣)하는 가운데서 공부를 지어 나아가야만 비로소 이것이 힘을 얻을 곳이다.


한 구절의 화두(話頭)를 몰록 일으켜서 눈썹 위에 모으고, 다닐 때나, 앉을 때나, 옷을 입고 밥을 먹을 때나, 손님을 맞고 보낼 때나, 항상 오직 이 한 구절의 <화두의 낙처(落處)>를 밝히려 할지니, 하루아침에 세수를 하다가 <콧구멍>(자기의 生緣處)을 만지고 보니, 원래가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었다.



4. 의심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공부를 하되, 의심을 일으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무엇이 의심인가? ···

▷ 태어났으나 어디서 온 줄 모르면 '온 곳'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 죽어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면 '가는 곳'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생사(生死)의 관문'을 깨뜨리지 못하면 의심이 문득 일어나리니, 눈썹 위에 매달려서 털어도 떨어지지 않고, 쫓아도 가지 않다가, 홀연히 하루아침에 의단(疑團)이 박살나면 생·사 두 글자가 다 부질없는 물건이다.



5. 간절함이 가장 힘이 있다.



공부를 하되, 가장 긴요한 것은 '절'(切) 자이니, 이 <간절할 절>자가 가장 힘이 있다.

간절하지 않으면 곧 게으름이 생기고, 게으름이 생기면 방종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만약 마음을 쓰되 '참으로 간절'(親切)하면 방종과 게으름이 어찌 생기겠는가?


그러므로 마땅히 알라! 이 '절'(切)자는 성인의 경지에 이르지 못할까를 근심하지도 않고, 생사를 깨뜨리지 못할까를 걱정하지도 않는다.
이 '간절하다'는 한 마디 말은 당장에 선악(善惡)과 무기(無記)와 삼성(三性)을 초월하니, 마음 쓰기를 간절히 하면 선(善)을 생각하지도 않고, 악(惡)을 생각하지도 않아서, 범하지도 떨어지지도 않나니, 화두(話頭)가 간절하면 마음이 들뜨지도(掉擧) 않고 혼곤히 가라앉지도(昏沈) 않는다.
이 '간절하다'는 한 마디는 가장 친절한 구절이라, 마음 쓰기를 간절히 하면 틈이 없어서, 마(魔)가 침노하지 못하고, 유무(有無) 등을 계교(計巧)하여 헤아리지도 않으므로 외도(外道)에 떨어지지 않는다.



6. 마음을 가지고 깨달아지기를 기다리지 말라.



공부를 하되, 마음을 가지고 깨닫기를 기다리지 말라.

 
마치 어떤 사람이 길 위에 멈추어 서서 집에 도달하기를 기다린다면 끝내 집에 이를 수 없듯이, 다만 모름지기 집에 이르도록 해야만 한다.
만약 마음을 가지고 깨달아지기를 기다린다면 끝내 깨달을 수 없으니, 다만 곧장 다그쳐서 깨닫게 할 뿐이요, 깨달음을 기다릴 일이 아니다.



7. 실오라기만한 '딴 생각'도 집착하지 말라.



공부를 하되, 실오라기만한 <딴 생각>도 집착하지 말라.

행주좌와(行住坐臥) 간에 다만 본래부터 참구하던 화두만을 들어서 의정(疑情)을 일으켜분연히 그 귀결처만을 찾으려 해야 한다. 만약 한 올만치의 딴 생각이라도 있으면 옛사람이 말한 "잡된 독이 심장에 들어가니, 혜명(慧命)이 위태롭도다." 한 것과 같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사람은 삼가해야 한다.

내가 말한 '딴 생각'이란 비단 세간법뿐 아니라, <마음 깨치는 일>을 제하고는 불법 가운데의 온갖 훌륭한 일들까지도 모두 <딴 생각>이라 한다.
어찌 불법 가운데의 일뿐이겠는가? <마음의 본체> 위에서 취하고, 버리고 집착하고, 교화하고 하는 모든 것을 <딴 생각>이라 한다.



8. '영리한 마음' 하나가 가장 두려운 것이다.



공부를 하되, <영리한 마음> 하나가 가장 두려운 것이다.

 
이 <영리한 마음>은 마치 독약과도 같아서 한 번 중독되면 비록 진짜 약이 나타나더라도 구제하지 못한다.
만약 진정으로 공부하는 이라면, '눈'은 마치 소경 같고, '귀'는 마치 귀머거리 같고, 생각이 겨우 일어나기만 하면 마치 은산철벽(銀山鐵壁)에 부딪친 것같이 해야 한다. 이렇게 공부해야 비로소 상응하게 된다.



9. 남이 일러주기를 기다리지 말라.



공부를 하되, 남이 설파(說破)해 주기를 기다리지 말라. 설사 설파해 주더라도 이것은 끝내 다른 이의 것이요, 자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다.

마치 사람이 서울로 가는 길을 물을 때, ···

다만 길을 가르쳐 주기를 청할지언정 서울의 일은 묻지 말아야 한다. 설사 그가 낱낱이 서울의 일을 설명하여 줄지라도 끝내 그것은 그가 본 일이요, 길을 물은 이가 직접 본 것은 아니다.
만약 스스로 힘써 행하지 않고 남의 설명만을 구하는 것도 이와 같다.



10. 인정(人情)을 가까이하지 말라.



공부를 하되, 반드시 중심을 바르게 하고, 굳고 우뚝하여 인정(人情)을 가까이하지 말라.

인정을 따르면 공부가 늘지 않는다. 공부가 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반드시 속된 수행자 축에 들 것이 틀림없다.

공부하는 사람은 고개를 들어도 하늘을 보지 않고, 고개를 숙여도 땅을 보지 않으며, 산을 보아도 이것이 산이 아니고, 물을 보아도 이것이 물이 아니며, 다니되 다니는 줄 모르고, 앉되 앉는 줄 모르며, 수만 군중 속에 있더라도 한 사람도 보지 않는다.


몸의 안팎이 오직 하나의 의단(疑團)뿐이어야 하나니, 이 의단을 깨뜨리지 못하면 맹세코 쉬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공부의 요체다.



11. 죽었다 깨어나지 못할까를 두려워하지 말라.



공부를 하되, 죽었다가 깨어나지 못할까를 두려워하지 말고, 다만 살았다가 죽지 못할까를 두려워해야 한다. 과연 '의정'(疑情)과 함께 <한 곳> 에 꽉 묶어 두었는지 잘 살피라.

그렇게만 한다면 시끄러운 경계는 버리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버려질 것이요, 허망한 마음은 맑히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맑아질 것이다.

육근(六根)의 문전(門前)이 본래 스스로 텅 비었으니, 이 텅 빈 자리에서 손짓하면 곧 이르르고, 부르면 곧 대꾸하거늘 어찌 살지 못할까를 근심하랴?



12. 문자나 말을 좇지 말라.



공부를 하되, 문구를 찾거나 구절을 좇지 말며, 말이나 어록을 기억하지도 말라.

아무 이익이 없을 뿐만 아니라 공부에 장애가 된다. '진실한 공부'가 도리어 반연(攀緣)과 분별을 이루니, 심행처(心行處)가 끊이기를 바란들 될 수 있겠는가?



13. '고요한 경지'를 탐내지 말라.



공부를 하되, '고요한 경지'를 탐내는 것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

(이 고요한 경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메마른 적멸>(枯寂) 속에 갇히게 하는데, (사람들이) 깨닫지도 알지도 못한다.
사람들이 흔히 <시끄러운 경지>를 싫어하고, <고요한 경지>를 좋아하는 것은 언제나 떠들썩한 속에서 시달리다가 문득 고요한 경계를 만나면 마치 꿀맛처럼 달고, 오랜 피로 끝에 단잠이 쏟아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어떻게 스스로 이렇게 치우친 마음을 깨달을 수 있겠는가?



14. 옛사람의 공안?? 망령되이 해석하지 말라.



공부를 하되, 고인(古人)의 공안(公案)에 대해 망령되이 해석을 붙이려 하지 말라. 비록 낱낱이 풀이하여 안다 하더라도 자기 분상(分上)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옛사람의 한 마디, 한 말씀이 마치 큰 불덩이 같아서, 가까이할 수도 없고, 건드릴 수도 없음을 알지 못한다. 하물며 그 속에서 앉거나 누울 수 있겠는가? 다시 그 가운데서 대·소(大小)와 상·하(上下)를 따진다면 신명(身命)을 다치지 않을 자가 없다.



15. 공부가 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공부를 하되, 공부가 늘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만약 공부가 늘지 않거든 다만 늘도록 하면 이것이 공부다.

만약 공부가 늘지 않는다 하여 후퇴의 북을 친다면, 비록 백겁 천생을 지낸다 해도 어찌할 수 없다.

의정(疑情)이 일어나서 놓아버릴 수 없는 곳, 이것이 바로 공부가 느는 길이다.


오직 생사(生死)의 두 글자를 이마 위에 붙여 두되, 마치 사나운 호랑이에게 쫓기듯 해야 한다. 만약 곧장 달려서 집에 이르지 못하면 생명을 잃을 터인데 어찌 걸음을 멈출 수 있겠는가?



16. 또렷또렷하게 분명히 하라.



공부를 하되, 화두를 들 때에 또렷또렷하게 분명히 하여, 마치 고양이가 쥐를 잡듯 하라.

옛사람이 말하기를, 「만약 살쾡이(邪見)를 베지 못하면 맹세코 쉬지 않으리라」 하였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귀신굴 속에 우두커니 앉아서 어두컴컴하게 한 평생을 보내리니,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는 두 눈을 부릅뜨고, 네 다리를 팽팽히 버티고, 오직 쥐를 잡아먹고야 말리라고 벼르면서, 닭이나 개 따위가 곁에 있어도 돌아보지도 않나니, ···
참선하는 사람도 그러하여, 오직 분연히 이 일을 밝히고야 말리라고 다짐해야 한다. 설사 팔계(八界; 利譽稱樂 四順, 衰毁譏苦 四違)가 면전에 어지러이 엇갈릴지라도 돌아보지 말아야 한다. 자칫 딴 생각이 일어나면 쥐뿐만 아니라 고양이까지도 달아나고 만다.



17. 마음을 기울여서 시나 게송을 짓지 말라.



공부를 하되, 마음을 기울여서 시(詩)나 게송(偈頌)이나 문장 등을 지으려는 일이 가장 두려워할 바다.

시나 게송을 지으면 시승(詩僧)이라 하고, 문장에 교묘하게 솜씨를 부리면 문자승(文字僧)이라 할 뿐, 이 모두가 <마음 공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무릇 역순(逆順)의 경계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곳을 만나거든 얼른 깨달아서 떨쳐버리고 화두를 들되, 경계의 반연을 따라 움직이지 않아야 비로소 옳다.


또 어떤 이는 말하기를, 「바쁠 것이 없다」 한다. 그러나 이 한 마디가 가장 사람을 그르치는 것이니 공부하는 이들은 삼가지 않을 수 없다.



18. 들어 제창하는 곳에서 긍정하지 말아야 한다.



공부를 하되, 들어 제창하는 곳에서 승당(承當, 肯定)하지 말아야 한다. 만약 긍정하면 진짜 바보인지라 참구(參究)와는 상응하지 않다.

 
다만 모름지기 의정(疑情)을 일으키되, 긍정할 곳도 없고 긍정할 이도 없음을 사무친다면, 마치 공중누각이 칠통팔달함과 같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도적을 잘못 알아서 제 자식으로 여기고, 하인을 잘못 알아서 상전으로 여기는 것과 같은 짓이 된다.


그러므로 옛사람이 말하길, 「나귀의 안장을 보고 아버지의 턱이라 잘못 여기지 말라」 했으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 여러 공안을 풀이하여 알려고 하지 말라.



공부를 하되, 한 화두만으로 마음을 쓸지언정 여러 공안(公案)을 풀이하여 알려고 하지 말라.
설사 안다 하더라도 끝내 이것은 '지식'이요, <깨달음>은 아니다.

 
그러므로 법화경(法華經)에 이르기를, ···
「이 법은 사량분별(思量分別)하는 마음으로 이해할 바가 아니니라」하였고, ···


또한 원각경(圓覺經)에 이르기를, ···
「사유심(思惟心)으로 여래의 원각경계(圓覺境界)를 헤아리면 이는 마치 반딧불로 수미산을 태우려는 것과 같아서 끝내 이루어질 수 없느니라」 했으며, ···

 
동산(洞山) 화상은 말하기를, ···
「'마음'과 '뜻'을 가지고 <현묘한 종지(宗旨)>를 배우려 한다면, 이는 마치 서쪽으로 가려는 이가 동쪽을 향하는 것과 같도다」 하였으니, ···


무릇 공안을 따져서 알려고 하는 이들이여! 가죽 밑에 피가 흐르거든 마땅히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도(道)는 모름지기 조금도 여의지 말아야 하니 여의면 도가 아니요, 공부는 응당 간단(間斷)이 없어야 하니 짬이 있으면 공부가 아니다.


진정한 납자(衲子)라면 마치 눈썹에 붙은 불을 끄듯,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 해야 할지니, 어찌 딴 일을 할 겨를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옛사람이 이르되, 「한 사람이 만 사람의 적(賊)을 만났을 때, 어찌 얼굴을 마주 대하여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을 겨를이 있으리요?」 하였는데, 이 말씀이 가장 요긴하니, 몰라서는 안 된다.
공부를 하되, 모름지기 아침저녁으로 게으르지 말아야 한다. 자명(慈明) 대사는 밤에 잠이 오면 송곳으로 찌르면서 말하기를, 「옛사람은 도를 위하여 먹지도 않고 자지도 않으셨거늘 나는 지금 어떤 사람인고?」 하셨다.



20. 정념(正念)을 잃지 말라.



공부를 하되, 잠깐만이라도 <정념>(正念)을 잃지 말라.

 
만약 참구(參究)한다는 일념을 잊어버린다면 반드시 이단(異端)에 빠져서 망망(茫茫)하여 돌이키지 못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정좌(靜坐)할 때, 오직 맑고 고요한 것을 좋아하여 <순수하게 맑고 티가 끊인 것>으로써 불법(佛法)이라 여긴다면, 이것은 <정념>(正念)을 잃고, <맑고 고요함>에 빠졌다고 한다.
또한 강설(講說)하고, 말하고, 움직이고 고요한 것 등을 불법이라 여긴다면, 이것은  <정념>을 잃고 식신(識神)을 잘못 알았다고 한다.
혹 망심(妄心)을 가지고 다시 망심을 억눌러서 망심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으로써 불법이라 여긴다면, 이것은 <정념>을 잃고, 마치 돌멩이로 풀을 짓누르듯이 한다고 하며,
또 파초 잎을 까듯이 하고 나서, 이 몸이 허공 같다고 관(觀)하여 딴 생각을 일으키지 않기를 마치 담벼락 같이 한다면, 이것은 <정념>을 잃고 <공망(空亡)에 떨어진 외도>라 하며, 또한 <혼(魂)이 흩어지지 않은 시체>라 하나니, ···
통틀어서 말하건대, 이 모두가 <정념>을 잃은 것이다.



21. 의정(疑情)을 일으켰거든 다시 그 의정을 쳐부숴야 한다.



공부를 하되, 의정(疑情)을 일으켰거든 다시 그 의정을 쳐부숴야 한다.


만약 일으킨 의정을 쳐부수지 못할 때는 마땅히 더욱 확실하게 <정념>을 지니되, 큰 용맹을 내어서 간절한 위에도 더욱 간절하게 해야 비로소 된다.


경산(徑山) 화상이 말하기를, ···


『 대장부가 이 <일대사 인연>(一大事因緣)을 결단코 궁구하고자 한다면,··· 첫째로 일체의 체면(體面)을 타파하고, 성급히 척추 뼈를 곤두세우고는 인정(人情)을 따르지 말고, 오직 전부터 자기가 의심하던 바를 이마 위에 붙여 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항상 남의 돈 백만 관(貫)을 흠포(欠逋)낸 사람이 빚쟁이의 독촉을 받으면서도 갚을 길은 없고, 창피를 당할 것은 두렵고 하여, 급할 일이 없는데도 늘 급해지고 늘 바빠지며, 큰 일이 없어도 늘 큰 일을 당한 것처럼 여겨야만 비로소 공부를 해나갈 분수가 있다.』 하였다.

 

현정선원

http://www.fuoyee.or.kr/index2.html

 

출처 : 求道歷程(구도역정)
글쓴이 : 푸른바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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