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좋은 날

도반과의 만남

희명화 2013. 2. 2. 20:19

 

어제 저녁에 산본이라는 동네를 다녀 왔다.

그곳에 살고있는 도반이 있어서 가는 길은 멀었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오후 5시경인데 비가 내려서인지 주위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지하철안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내 생각은 금새 사라지고 말았다.

그저 지하철안에 사람들이 다소 많다고 느껴지긴 했지만 그다지 신경이 안쓰였다.

그저 내 자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지하철은 어디인지 모를 역을 계속 통과하고 있었다.

어디인지 모르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어디를 향하여 가는 걸까?

나는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장소를 가는 것도  이상하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빨리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내안에 각인되어 있어서 그런가 보다.

어느새 지하철이 산본역에 도착했다. 정확하게 한 시간이 걸렸다.

 

만나기로 했던 3번 출구쪽으로 나가보니, 도반은 벌써 출구 정가운데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주 정가운데 서서... 아주 똑바른 자세로... 서 있었다.

순간 나는 웃음이 나왔다. 반가움의 웃음이 아니라 도반이 서 있는 모습이 우스웠다.

출구에 오가는 사람도 많았는데 정가운데 서 있던 모습을 보면서 도반의 일상의 삶이 보여졌다.

바르고 단정하고 정확한..... 그 어떤 정돈되어 있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오랫만에 민속주점에 들어가서 곡차와 파전을 먹었다.

이런 곳에 들어와본지도 아마 수 년은 된 것 같다.  문득...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오늘은 도반이 나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해 준것이다.  가게를 운영하고 있어서 시간이 자유롭지도 않건만

일부러 가게문을 닫고 나를 맞아 주었다.  고마운 친구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순전히 불교공부 이야기 이다. 특히 견성에 대한 이야기다.

자성, 불성, 본래면목,...

영원한 삶을 위한 우리들의 이야기....

남들은 알아 듣지도 못할 이야기를 몇시간 째 자리를 옮겨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산본에서 유명하다는 불쨤봉집으로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틈바구니에 끼어 앉아 쨤봉을 먹었다. 국물이 아주 빨개서 매울 줄 알았는데 전혀 안매웠다. 아마 내 속이 예전보다 좋아진것 같다. 양이 너무 많아서 반쯤만 먹고 나왔다.  그리고 커피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 커피집은 아주 이상했다.  아주 작은 방이 수 없이 많았고, 방안에는 둥근 탁자가 있어서 둘, 셋 정도 앉아서 담소하기에 아주 좋아 보였다. 방문은 예쁜 커튼으로 되어 있었고, 주문을 하려면 벽에 붙은 벨을 누르면 서비스맨이 커튼을 제치고 얼굴을 내민다. 이런 커피집은 처음 구경했다. 커튼을 치고 앉아서 이런 저런 법이야기를 끝없이 나누었다. 나 보다 견처가 수승하고 체험이 깊어서 배울점이 많은 도반이다.

 

밤 11시가 되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녁시간에 만나서도 거의 다섯시간 동안을 오붓하게 담소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나는 여지껏 막차를 타본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마음이 통하는 도반을 만날 때는 대화를 나누어도 힘들지 않고 시간이 가는줄도 모른다. 그저 편안하고 즐겁기만 하다. 아마도 뜻이 같고 맑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서그럴것 같다. 향기로운 사람....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차안에서 카톡이 울렸다.

"보살님~ 오늘 많이 즐거웠고 행복했습니다. 늦은 밤길 조심해서 가세요..."

"예~~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김영애 자연세상 원장님~~~~ ..."

 

 

어제는 조금 우울한 날이였다.

비가 와서가 아니라...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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