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스님]도문 스님(장수 죽림정사 조실)
“나는 용성 스님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도문 스님의 첫마디는 부드럽지만 단호했다. 용성 스님의 열 가지 유훈을 어느 정도 이루셨느냐고 묻자 “그저 흉내나 낸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신다. 곁에 있던 ‘백용성조사 유훈실현후원회’ 박상록 사무국장이 “스님께서는 그렇게 많은 일을 하시고도 늘 내놓을 것이 없다고 하신다”며 웃는다.
도문 스님은 40년 가까이 용성 스님의 열 가지 유훈을 실현하고, 용성 스님의 교화지침인 불교의 생활화ㆍ대중화ㆍ지성화를 위해 일심으로 매진해왔다. 그 결과 열 가지 유훈실현사업이 완료됐거나 마무리단계에 있다.
용성 스님(1864~1940)은 독립운동과 국민계몽운동을 펼친 선교(禪敎)를 겸비한 근대의 고승으로 도문 스님에게는 ‘할아버지 스님’이 된다. 도문 스님의 은사인 동헌 스님이 용성 스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만해 스님보다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3ㆍ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의 대표자로 참가해 구국운동에 헌신했다. 또 불교 대중화를 위해 <화엄경> 80권을 한글로 번역, 불교 역경에 획기적인 업적을 이뤘으며, 선사상 홍보와 사원자립경제를 위해 선농일치(禪農一致)운동을 전개했다.
도문 스님은 용성 스님의 3대 교화지침에 따라 공무원불자회와 논산훈련소 수계법회는 물론이고 전국 각지를 다니며 포교에 몰두, 불경과 조사어록을 100만권 넘게 배포했고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계를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외부 법문과 용성 스님 저서와 경전을 쉽게 번역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아침 발우공양을 하고 나서 원고 쓰고, 점심공양하고 원고 쓰고, 저녁공양하고 원고 쓰지요. 공양 뒤마다 참선을 하지만 거의 대부분 원고 쓰는데 시간을 보냅니다.”
의사와 제자들이 무리하게 원고 쓰는 것을 극구 만류하지만 스님은 “용성 스님 일에 게으를 수 없다”며 고집을 꺾지 않는다.
스님의 말씀을 듣는 도중 방 한 켠에 세워둔 잠자리채가 눈에 들어왔다. 용도를 여쭈었다.
“잠자리채가 아니라 파리채입니다. 파리가 방에 들어오면 죽일 수 없으니 파리채로 잡아서, 몸뚱이 닦아서 사람으로 다시 오라고 얘기하며 놓아줍니다.”
이렇듯 계율에 철저한 도문 스님이 제자들을 엄하게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 동국대 교수 보광 스님, 종회의원 학담 스님, 前 해인사 율원장 혜능 스님이 도문 스님의 제자다.
그렇지만 신도들에게는 자상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한다. 법문을 가서 법문비를 받으면 신도들이나 마을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회향한다.
도문 스님이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용성 스님의 가르침인 ‘오대원칙’을 강조한다.
“참선수행자와 종교지도자는 안목이 투철해야 하고 간경수행자나 교학연구자는 해박해야 합니다. 또 지계자(持戒者)와 도덕 수행자는 엄정해야 하고, 종무나 업무 이행자는 공정해야 하며, 공무 또는 사무종사자는 분명해야 합니다. 이 원칙에 충실하면 전 인류가 편안해집니다.”
취재 도중 많은 불자들이 스님을 만나기 위해 죽림정사를 찾아왔다. 스님은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불자들을 위해 법문을 했다. 이렇듯 스님은 찾아오는 손님을 물리치는 법이 없다. 인연 따라 왔으니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성불인연(成佛因緣)을 짓는 것이라 생각에서다. 그리고 사람을 대할 때마다 그 사람에게 맞는 대화로서 궁금증을 풀어주고, 참선ㆍ염불ㆍ간경ㆍ주력ㆍ불사 수행 중 근기에 맞춰 교화한다. 제자들과 신도들은 이를 일러 ‘감응수기(感應隨機)’의 교화방법이라고 말한다. 불자들에게 꼭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느냐고 묻자 도문 스님은 “기자님이 계신 곳이 진리지요” 하신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서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진력을 다하면 진리를 볼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한낮의 따가운 햇살을 머금은 죽림정사는 가을 문턱을 두드리고 있었다. 대웅전 왼쪽 뒤편으로 용성 스님의 생가가 보이고 오른쪽 절 옆으로는 냇물이 흐른다. 인근 마을과 경계는 없다. 절이 마을이고 마을이 절이다. 여유롭고 평화롭다. 도문 스님의 모습도 그랬다.
도문 스님은
도문 스님에게는 ‘용성 스님’과 ‘전법’이라는 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도문 스님의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용성 스님이 남긴 10가지 유훈을 실현하는 전법활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문 스님은 전법활동을 하기 전까지 20년 넘게 선수행에 몰두했던 수행자다. 40년 동안 도문 스님을 모셔 온 원일화 보살(78)은 도문 스님을 이렇게 말한다.
“한 번 문을 잠그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누군가 문을 열어야만 살아계시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요. 오죽했으면 은사이신 동헌 스님께서 주장자를 들고 들어가셔서 쥐 파먹는다고 야단을 치셨을까요. 앉아서 죽으면 쥐가 발바닥을 파먹는다는 겁니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무섭게 수행하셨지요.”
1935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도문 스님은 46년 장성 백양사에서 동헌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고, 만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60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남원 실상사, 의성 고운사, 공주 마곡사, 장성 백양사, 정읍 내장사, 서울 대각사 주지와 조계종 감찰원 감찰국장, 총무원 교무부장,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장성 죽림정사에 주석하고 있는 스님은 경주 천룡사ㆍ서울 대성사ㆍ네팔 대성석가사 조실을 맡고 있다.
글=한명우 기자ㆍ사진=고영배 기자
도문 스님의 가르침
‘내가 제일’이란 집착 버리세요
용성조사께서는 깨달음으로 가는 다섯 가지 길을 제시했습니다. 참선ㆍ염불ㆍ간경ㆍ주력ㆍ불사 수행을 해야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즉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ㆍ위 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에는 소승선(小乘禪) 대승선(大乘禪) 최상승선(最上乘禪) 등이 있습니다.
소승선은 관법수행이라고도 합니다. 한 생각이 일어났는데, 그 생각이 어디서 나왔는지 캐보면 근본도, 당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각이라는 놈이 어디서 나왔는지 찾아보면 나온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쉬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고요해지는데, 고요함이 극치에 이르면 밝아집니다.
대승선은 나도 원래 비고, 일체 만법도 다 비었다는 아공(我空), 법공(法空)을 믿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인연 따라서 나온 것이며, 이것을 알고 해탈을 위해 수행하는 것이 대승선입니다. 그리고 간화선을 최상승선인 조사선이라고 합니다.
조계종에서는 간화선 수행을 합니다. 간화선의 3대 요건은 대분지(大憤志) 대신근(大信根) 대의정(大疑情)입니다. ‘대분지’란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한 번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고, ‘대신근’이란 자신에게도 부처님과 똑같은 진실본성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대의정’이란 대분지와 대신근을 바탕으로 공안을 참구하는 가운데 큰 의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참선수행은 이런 마음을 일으켜 자기의 본성을 보는 수행입니다. 자기본성을 보지 않고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염불수행을 해야 합니다. 삼매란 올바른 마음으로 수행에 들어간 경지를 말합니다.
그러면 올바른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부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염불수행에는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염불(念佛), 부처님의 교법을 생각하는 염법(念法), 부처님의 법을 받들어 수행하고 교화하는 스님들의 공덕을 생각하는 염중(念衆), 계를 지켜 도를 얻겠다고 생각하는 염계(念戒), 보시의 공덕을 생각하는 염시(念施), 하늘나라의 과보가 청정하다고 생각하는 염천(念天), 고요한 곳에서 도를 닦겠다고 생각하는 염휴식(念休息), 망상을 제거하는 데에만 생각을 두는 염안반(念安般), 이 몸이 진실하고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염신(念身),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염사(念死) 이렇게 열 가지가 있습니다. 이런 조건을 다 갖추고 수행하면 삼매에 들 수 있습니다.
간경은 글자 그대로 경을 보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눈은 현상만 보게 되지만 수행을 하게 되면 현상 이외의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경전과 조사어록을 보아야만 지혜의 눈을 얻어 법안(法眼)을 뜰 수 있으며, 지혜의 눈을 얻지 못하고는 성불할 수 없습니다.
주력수행을 해서 업장을 소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전생에 지은 죄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금생에 이르도록 다생다겁으로 지은 업장을 소멸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주력수행을 해야 합니다.
주력수행은 다라니수행이라고도 하는데, 다라니(陀羅尼)는 지혜 혹은 삼매, 또는 진언을 말합니다. 다라니의 힘은 네 가지가 있으니, 부처님의 교법을 듣고 잘 기억해 잊지 않고 지니는 법(法)다라니, 모든 법의 한량없는 뜻을 모두 지녀서 잊지 않는 의(義)다라니, 선정(禪定)에 의해 발한 말로써 신묘한 영험이 있는 작용을 하는 주(呪)다라니,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달은 경지에 안주하는 인(忍)다라니가 있어요. 이처럼 다라니는 무량무변한 뜻을 지니고 있어 모든 악한 법을 버리고 한량없는 좋은 법을 가지는 것입니다.
불사(佛事)는 성불인연(成佛因緣)을 짓는 일이니, 불사수행이란 이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복덕과 지혜인데, 불사는 반드시 복(福)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 복전(福田)을 알아야 합니다.
복전은 경전(敬田)ㆍ은전(恩田)ㆍ비전(悲田) 이렇게 삼복전(三福田)이 있는데, ‘경전’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여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배하고 찬탄하여 참회발원하는 것을 말하며, ‘은전’은 부모와 국가와 중생의 은혜를 모두 갚는 것을 말합니다. 또 ‘비전’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힘닿는 데까지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고 병들고 의지할 데 없는 모든 불행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돌봐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선ㆍ염불ㆍ간경ㆍ주력ㆍ불사 수행을 하면 선정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선정과 지혜는 최고의 수행덕목입니다. 계율은 깨끗한 그릇과 같으며, 번뇌망상이 다 끊어진 선정은 맑은 물과 같습니다. 그 깨끗한 그릇에 맑은 물을 담아야만 지혜의 달이 비칩니다. 계정혜 삼학은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가르침이자 곧 부처님 가르침이며, 삼학을 닦는 것은 곧 부처님 말씀을 받들어 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고통·번뇌·망상 등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를 서원하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에 얽혀 있는 것을 풀거나 끊어야 하고, 자기가 제일이라는 관념도 벗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소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소를 보게 됩니다. 결국엔 그 소가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정리=한명우 기자·사진=고영배 기자
|
|||
“나는 용성 스님 심부름꾼에 불과합니다.”
도문 스님의 첫마디는 부드럽지만 단호했다. 용성 스님의 열 가지 유훈을 어느 정도 이루셨느냐고 묻자 “그저 흉내나 낸 정도에 불과하다”고 하신다. 곁에 있던 ‘백용성조사 유훈실현후원회’ 박상록 사무국장이 “스님께서는 그렇게 많은 일을 하시고도 늘 내놓을 것이 없다고 하신다”며 웃는다.
도문 스님은 40년 가까이 용성 스님의 열 가지 유훈을 실현하고, 용성 스님의 교화지침인 불교의 생활화ㆍ대중화ㆍ지성화를 위해 일심으로 매진해왔다. 그 결과 열 가지 유훈실현사업이 완료됐거나 마무리단계에 있다.
|
||||
용성 스님(1864~1940)은 독립운동과 국민계몽운동을 펼친 선교(禪敎)를 겸비한 근대의 고승으로 도문 스님에게는 ‘할아버지 스님’이 된다. 도문 스님의 은사인 동헌 스님이 용성 스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만해 스님보다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3ㆍ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불교의 대표자로 참가해 구국운동에 헌신했다. 또 불교 대중화를 위해 <화엄경> 80권을 한글로 번역, 불교 역경에 획기적인 업적을 이뤘으며, 선사상 홍보와 사원자립경제를 위해 선농일치(禪農一致)운동을 전개했다.
도문 스님은 용성 스님의 3대 교화지침에 따라 공무원불자회와 논산훈련소 수계법회는 물론이고 전국 각지를 다니며 포교에 몰두, 불경과 조사어록을 100만권 넘게 배포했고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계를 주었다. 그리고 지금은 외부 법문과 용성 스님 저서와 경전을 쉽게 번역하는 일에 매달리고 있다.
|
||||
“아침 발우공양을 하고 나서 원고 쓰고, 점심공양하고 원고 쓰고, 저녁공양하고 원고 쓰지요. 공양 뒤마다 참선을 하지만 거의 대부분 원고 쓰는데 시간을 보냅니다.”
의사와 제자들이 무리하게 원고 쓰는 것을 극구 만류하지만 스님은 “용성 스님 일에 게으를 수 없다”며 고집을 꺾지 않는다.
스님의 말씀을 듣는 도중 방 한 켠에 세워둔 잠자리채가 눈에 들어왔다. 용도를 여쭈었다.
“잠자리채가 아니라 파리채입니다. 파리가 방에 들어오면 죽일 수 없으니 파리채로 잡아서, 몸뚱이 닦아서 사람으로 다시 오라고 얘기하며 놓아줍니다.”
|
||||
이렇듯 계율에 철저한 도문 스님이 제자들을 엄하게 가르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정토회 지도법사 법륜 스님, 동국대 교수 보광 스님, 종회의원 학담 스님, 前 해인사 율원장 혜능 스님이 도문 스님의 제자다.
그렇지만 신도들에게는 자상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지나치지 못한다. 법문을 가서 법문비를 받으면 신도들이나 마을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회향한다.
도문 스님이 만나는 사람 누구에게나 용성 스님의 가르침인 ‘오대원칙’을 강조한다.
“참선수행자와 종교지도자는 안목이 투철해야 하고 간경수행자나 교학연구자는 해박해야 합니다. 또 지계자(持戒者)와 도덕 수행자는 엄정해야 하고, 종무나 업무 이행자는 공정해야 하며, 공무 또는 사무종사자는 분명해야 합니다. 이 원칙에 충실하면 전 인류가 편안해집니다.”
|
||||
취재 도중 많은 불자들이 스님을 만나기 위해 죽림정사를 찾아왔다. 스님은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불자들을 위해 법문을 했다. 이렇듯 스님은 찾아오는 손님을 물리치는 법이 없다. 인연 따라 왔으니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성불인연(成佛因緣)을 짓는 것이라 생각에서다. 그리고 사람을 대할 때마다 그 사람에게 맞는 대화로서 궁금증을 풀어주고, 참선ㆍ염불ㆍ간경ㆍ주력ㆍ불사 수행 중 근기에 맞춰 교화한다. 제자들과 신도들은 이를 일러 ‘감응수기(感應隨機)’의 교화방법이라고 말한다. 불자들에게 꼭 당부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느냐고 묻자 도문 스님은 “기자님이 계신 곳이 진리지요” 하신다.
|
||||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서든 주인의식을 가지고 진력을 다하면 진리를 볼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한낮의 따가운 햇살을 머금은 죽림정사는 가을 문턱을 두드리고 있었다. 대웅전 왼쪽 뒤편으로 용성 스님의 생가가 보이고 오른쪽 절 옆으로는 냇물이 흐른다. 인근 마을과 경계는 없다. 절이 마을이고 마을이 절이다. 여유롭고 평화롭다. 도문 스님의 모습도 그랬다.
도문 스님은
도문 스님에게는 ‘용성 스님’과 ‘전법’이라는 말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도문 스님의 일거수일투족 모두가 용성 스님이 남긴 10가지 유훈을 실현하는 전법활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문 스님은 전법활동을 하기 전까지 20년 넘게 선수행에 몰두했던 수행자다. 40년 동안 도문 스님을 모셔 온 원일화 보살(78)은 도문 스님을 이렇게 말한다.
“한 번 문을 잠그면 일주일이고 열흘이고 누군가 문을 열어야만 살아계시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요. 오죽했으면 은사이신 동헌 스님께서 주장자를 들고 들어가셔서 쥐 파먹는다고 야단을 치셨을까요. 앉아서 죽으면 쥐가 발바닥을 파먹는다는 겁니다.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무섭게 수행하셨지요.”
1935년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도문 스님은 46년 장성 백양사에서 동헌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고, 만암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60년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이후 남원 실상사, 의성 고운사, 공주 마곡사, 장성 백양사, 정읍 내장사, 서울 대각사 주지와 조계종 감찰원 감찰국장, 총무원 교무부장,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장성 죽림정사에 주석하고 있는 스님은 경주 천룡사ㆍ서울 대성사ㆍ네팔 대성석가사 조실을 맡고 있다.
글=한명우 기자ㆍ사진=고영배 기자
도문 스님의 가르침
‘내가 제일’이란 집착 버리세요
용성조사께서는 깨달음으로 가는 다섯 가지 길을 제시했습니다. 참선ㆍ염불ㆍ간경ㆍ주력ㆍ불사 수행을 해야만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즉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ㆍ위 없는 올바른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선에는 소승선(小乘禪) 대승선(大乘禪) 최상승선(最上乘禪) 등이 있습니다.
소승선은 관법수행이라고도 합니다. 한 생각이 일어났는데, 그 생각이 어디서 나왔는지 캐보면 근본도, 당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생각이라는 놈이 어디서 나왔는지 찾아보면 나온 곳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마음이 쉬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고요해지는데, 고요함이 극치에 이르면 밝아집니다.
|
||||
대승선은 나도 원래 비고, 일체 만법도 다 비었다는 아공(我空), 법공(法空)을 믿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인연 따라서 나온 것이며, 이것을 알고 해탈을 위해 수행하는 것이 대승선입니다. 그리고 간화선을 최상승선인 조사선이라고 합니다.
조계종에서는 간화선 수행을 합니다. 간화선의 3대 요건은 대분지(大憤志) 대신근(大信根) 대의정(大疑情)입니다. ‘대분지’란 생사대사(生死大事)를 한 번 해결해야겠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고, ‘대신근’이란 자신에게도 부처님과 똑같은 진실본성이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고, ‘대의정’이란 대분지와 대신근을 바탕으로 공안을 참구하는 가운데 큰 의심을 일으키는 것을 말합니다. 참선수행은 이런 마음을 일으켜 자기의 본성을 보는 수행입니다. 자기본성을 보지 않고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삼매에 들기 위해서는 염불수행을 해야 합니다. 삼매란 올바른 마음으로 수행에 들어간 경지를 말합니다.
그러면 올바른 마음이란 무엇입니까. 바로 부처님을 마음에 모시는 것입니다. 염불수행에는 부처님 명호를 부르는 염불(念佛), 부처님의 교법을 생각하는 염법(念法), 부처님의 법을 받들어 수행하고 교화하는 스님들의 공덕을 생각하는 염중(念衆), 계를 지켜 도를 얻겠다고 생각하는 염계(念戒), 보시의 공덕을 생각하는 염시(念施), 하늘나라의 과보가 청정하다고 생각하는 염천(念天), 고요한 곳에서 도를 닦겠다고 생각하는 염휴식(念休息), 망상을 제거하는 데에만 생각을 두는 염안반(念安般), 이 몸이 진실하고 상주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염신(念身), 자신이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염사(念死) 이렇게 열 가지가 있습니다. 이런 조건을 다 갖추고 수행하면 삼매에 들 수 있습니다.
간경은 글자 그대로 경을 보는 것입니다. 육체적인 눈은 현상만 보게 되지만 수행을 하게 되면 현상 이외의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경전과 조사어록을 보아야만 지혜의 눈을 얻어 법안(法眼)을 뜰 수 있으며, 지혜의 눈을 얻지 못하고는 성불할 수 없습니다.
주력수행을 해서 업장을 소멸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전생에 지은 죄는 어쩔 수 없기 때문에 금생에 이르도록 다생다겁으로 지은 업장을 소멸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주력수행을 해야 합니다.
주력수행은 다라니수행이라고도 하는데, 다라니(陀羅尼)는 지혜 혹은 삼매, 또는 진언을 말합니다. 다라니의 힘은 네 가지가 있으니, 부처님의 교법을 듣고 잘 기억해 잊지 않고 지니는 법(法)다라니, 모든 법의 한량없는 뜻을 모두 지녀서 잊지 않는 의(義)다라니, 선정(禪定)에 의해 발한 말로써 신묘한 영험이 있는 작용을 하는 주(呪)다라니,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달은 경지에 안주하는 인(忍)다라니가 있어요. 이처럼 다라니는 무량무변한 뜻을 지니고 있어 모든 악한 법을 버리고 한량없는 좋은 법을 가지는 것입니다.
불사(佛事)는 성불인연(成佛因緣)을 짓는 일이니, 불사수행이란 이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복덕과 지혜인데, 불사는 반드시 복(福)으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그 복전(福田)을 알아야 합니다.
복전은 경전(敬田)ㆍ은전(恩田)ㆍ비전(悲田) 이렇게 삼복전(三福田)이 있는데, ‘경전’은 불법승 삼보에 귀의하여 공경하고 공양하며 예배하고 찬탄하여 참회발원하는 것을 말하며, ‘은전’은 부모와 국가와 중생의 은혜를 모두 갚는 것을 말합니다. 또 ‘비전’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힘닿는 데까지 가난하고 어렵고 힘들고 병들고 의지할 데 없는 모든 불행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돌봐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참선ㆍ염불ㆍ간경ㆍ주력ㆍ불사 수행을 하면 선정과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선정과 지혜는 최고의 수행덕목입니다. 계율은 깨끗한 그릇과 같으며, 번뇌망상이 다 끊어진 선정은 맑은 물과 같습니다. 그 깨끗한 그릇에 맑은 물을 담아야만 지혜의 달이 비칩니다. 계정혜 삼학은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최고의 가르침이자 곧 부처님 가르침이며, 삼학을 닦는 것은 곧 부처님 말씀을 받들어 행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올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고통·번뇌·망상 등 온갖 집착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통해 해탈의 경지에 이르기를 서원하는 이고득락(離苦得樂)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에 얽혀 있는 것을 풀거나 끊어야 하고, 자기가 제일이라는 관념도 벗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서 소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소를 보게 됩니다. 결국엔 그 소가 자기 자신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정리=한명우 기자·사진=고영배 기자
출처 : 求道歷程(구도역정)
글쓴이 : 푸른바다 원글보기
메모 :
'불교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네가 아무것도 모른다더니 지금 다 잘 알고 있지 않느냐” (0) | 2011.11.03 |
---|---|
공부하다 죽어라. -혜암스님- (0) | 2011.11.03 |
[스크랩] "평상심이든 깨달음이든, 그 무엇이든 생각을 일으켜 구하거나 바라면 어긋나고 만다"(혜국 스님) (0) | 2011.11.03 |
[스크랩] 경허-수월-묵언 선사의 법을 이은 도천 큰스님 (0) | 2011.11.03 |
[스크랩] 우룡 스님의 수행 체험기 (0) | 2011.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