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주력(呪力) 수행

희명화 2011. 8. 10. 18:24

 

 

               주력(呪力) 수행이란 무엇인가?

 

 

주력(呪力)은 진실한 말의 힘을 빌린다는 뜻 입니다.그래서 진언(眞言)이라고도 합니다.

진언이나 주력은 어떤 개념이나 인위적인 의도가 전혀 개입되지 않은 '말 이전의 말' 이며,사람의 의도가 개입되기 이전의 소리이기 때문에, 이것을 범음(梵音)이라고도 하며, 우주의 소리라고도 합니다. 바로 존재 본래의 소리인 것입니다.

 

진언은 인도말로 만트라 라고도 하며, 다라니, 총지(總持), 심인(心印), 능지(能持), 명주(明呪), 호주(護呪) 라고도 합니다.  주력, 진언은 진리를 담고 있으며 부처님의 진심을 표현하며 오직 소리에 집중할 뿐입니다.

 

만약에 주력을 하면서 어느 대상을 정해 놓고 그것을 향하여 한다면 그것은 망념에 빠지게 되는 것이며,오직, 내안에서 우러나오는 생각과 아련한 기억의 기쁨과 슬픔들을 하나하나 일어나는데로 바라보는 것이 진언수행의 관건입니다. 

 

진언을 하는 동안 자신의 본래마음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하여 스스로를 돌아보는 참진언이 필요한 것입니다. 다겁생에 지어온 수 많은 업장들을 진언을 통하여 스스로 맑히게 됩니다. 진언은 신비한 힘을 지닌 말이며, 부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말이며, 자신의 불성을 일깨우는 말입니다. 진언의 뜻을 굳이 해석하려고 애쓰기 보다는 진언의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불성을 만나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 입니다.

 

진언 중에서 문장이 긴것을 다라니 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 불설소재길상다라니.)

 

꾸준한 주력수행을 통하여 자신의 불성을 밝혀 가시길 바랍니다.

 

 

불.보살님 세계관 입각 진언 외어야

 

의미를 알 수 없는 진언을 외우는 주력이

어떻게 해서 수행이 되며 수행의 효과를 드러내게 되는가?

 

전혀 뜻을 알 수 없는 말을 외운다는 것은

 

아직 지각이 깨어 있지 못한 어린아이가

단순한 말을 지껄이는 것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더 나아가 같은 주력의 내용을 불자들이 외는 것과

무속인들이 외는 것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과연 주력이 불교의 수행법으로서

그것이 불교만의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으며

온전한 수행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

 

진언은 신비한 힘을 지닌 말이요,

부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말이며

부처님이 설한 광대한 량의 경전말씀을 응축해서 드러내는 말이나.

그러므로 그 말은 우리들의 불성을 일깨우는 말이요

내 마음의 생명을 깨우고 살아나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단순한 단음절 또는 몇 음절,

또는 길어야 여러 가지 문장으로 구성된 음절이라는 점에서,

그러면서도 그것이 부처님의 마음과 가르침 전체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생각과 의미의 자취와 영역을 벗어나 있는 말이되 말이 아니다.

 

생각과 의미로 그 몇 음절의 진언을 해석할 경우,

주력의 가치와 역할은 사라지고 말며

부처님의 장광설을 조그마한 상자에 가두어두는 꼴이 되고 만다.

 

진언은 생각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다.

 

생각과 의미로 주력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점에서

어쩌면 그것은 화두와 닮아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은 사유를 동반한 말이다.

생각은 이성을 추리 작용을 동반하며 이러한 작용을 통해서

있지도 않는 복잡한 관념을 만들고 내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온갖 망상과 억측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이 생각 때문에 사실을 있는 대로 여실지견하지 못한다.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 들으면 좋을 텐데 무시이래로 쌓아온 과거의 습 때문에,

그 생각의 흔적 때문에 사실을 사실대로 못보고 나만의 색안경을 끼고

주변 여건과 주변의 사람들을 판단하며 시기질투하고 비교하며 조작하면서 살아간다.

 

그러한 시비와 조작 속에서 우리는 있지도 않은 허깨비를 만들어 놓고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소리로 무념의 경지 다다라야

無我 경지서 부처님 마음 직시

 

또한 우리의 생각은 개개의 사물 그 자체, 세계 그 자체, 나 자신의 본래 모습,

나의 생명력 자체를 지시하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한다.

 

생각하는 순간,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곳으로부터 벗어나가 되며

또 다른 딜레마에 직면하기 마련이다.

 

일상적인 말로는,

생각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불가해한 영역이 우리주변에는 무수히 많다.

 

이 지점에 이르러 생각과 이성은 자기 한계를 절감하고 침묵한다.

주력에서 사용되는 진언은 이러한 말의 자취, 생각과 의미의 자취가 사라진 말이다.

그러면서도 그 말은 부처님의 마음을 드러내고 법계를 유지하며 한 곳으로 모으는 작용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주력을 외움으로써 그 의미를 새기지 말고

소리를 간직함으로써 생각을 차단하고 무념의 경지에 다다라야 한다.

 

그 무념의 경지에서 그 말이 지시하는 부처님 마음을 직시하고

나의 진정한 생명력과 우주와 접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언을 외울 때 생각을 차단하고

온 몸과 마음을 기울여 소리 자체에 몰두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주력 삼매에 들어 무아의 상태에서 불.보살의 힘을 감지해야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런 의미도, 해석도 불가해한 주력을 불자들이 외는 것과

무속인들이 외는 것과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

 

무속인들도 천수주력을 외우며 천수주력을 친다고 하는데,

과연 이러한 주력과 불교의 주력 사이에는 어떠한 다른 점도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불자들은 불.보살님의 마음과 세계관에 입각해서 주력을 외어야 한다.

그 주력을 설하게 된 불보살님의 가르침을 간직하고 주력을 외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수주력, 능엄주력, 광명진언, 육자진언 등등을 설한 각각의 불.보살님의 본심에

깨어 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주력을 할 때는 먼저 불보살님께 귀의하고

 그것을 설한 불보살의 마음과 의미를 되새기며

 서원을 발하고 온 마음을 기울여 소리에 집중하면서 진언을 외어나가야 한다. 

 

 

조계종 포교연구실

 

[불교신문 2381호/ 12월1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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