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참회

희명화 2013. 2. 7. 19:26

죄가 있으면 참회하라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이 진언은 절에 다니는 사람이라면 귀에 많이 익은 것으로서 불자들이 아침저녁으로 독송하는 <천수경>에도 나오는 참회진언이다. 어리석은 중생들은 제가 지금 지은 허물도 돌아보지 않고 합리화 시키려 애쓰는데 마음 닦는 사람들은 이렇게 진언을 외워가며 과거에 지은 죄업, 알게 모르게 지은 죄업까지 모두 참회한다. 참회를 통해 자신의 허물을 부끄러워하고 뉘우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스스로에게 다시는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다. 이러한 참회가 있으므로 수행자들은 흔들림 없이 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선가귀감> 69장에서 말한다.

有罪卽懺悔 發業卽 愧 有丈夫氣象 又改過自新 罪隨心滅.

죄가 있으면 참회하고 잘못된 일이면 부끄러워하는 곳에 대장부의 기상이 있다. 또 허물을 고쳐 저절로 마음이 새로워지면 죄업이 그 마음 따라 없어질 것이다.

잘못 삶으로써 허물이 드러날 때 스스로 부끄러움을 아는 것을 참괴(?愧)라 하고 자신의 허물을 부끄럽게 알고 고쳐서 다시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것을 참회(懺悔)라 한다. 육조 스님은 참회에 대하여 <육조단경>에서 말한다.

“무엇을 참(懺)이라 하고, 무엇을 회(悔)라고 하는가? 참(懺)이란 과거의 잘못을 뉘우쳐서 예전에 지은 나쁜 짓인 어리석음, 교만, 속임수, 시기, 질투한 죄들을 모두 뉘우쳐서 다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회(悔)란 뒷날 생길 허물을 생기지 않게 하려고 미리 다짐하는 것이다. 이제부터 지을 나쁜 모든 짓인 어리석음, 교만, 속임수, 시기, 질투하는 죄들을 지금 깨달아 영원히 모두 없애버림으로써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 이를 회(悔)라고 한다. 참(懺)과 회(悔) 이 둘을 합쳤기 때문에 참회라고 부른다.”

참회는 죄의 자성(自性)이 공(空)임을 깨달아 참회하는 ‘이참(理懺)’이 있고 절을 하며 몸으로 뉘우치는 ‘사참(事懺)’이 있다. ‘이참’은 실상(實相)의 이치를 관하여 허물을 뉘우치고 마음을 바로 잡는 참회이다. 죄란 비난 받을 만한 나쁜 행동이지만 그것도 알고 보면 본디 자성이 없다. 중생의 죄업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마음에서 부질없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죄업으로부터 벗어나려면 먼저 그 죄를 가져오는 중생의 마음을 버려야 한다. 옳고 그름을 따져서 시비하는 분별심이 사라질 때, 분별심이 없어지는 것에 따라 중생의 죄도 함께 없어진다. 죄도 없어지고 분별하는 마음도 사라질 때, 그 자리가 바로 모든 법에 실체가 없다는 공성(空性)이다. ‘나는 나쁘다, 이것은 죄이다’라고 생각하는 주체로서 마음이 사라지니, 이 마음의 대상이 되는 객체로서 죄도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주객이 함께 사라지는 경지를 터득해야 진짜 참회를 한 대장부이다. 이참의 뜻을 잘 설명한 게송을 보자.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則名爲眞懺悔)
죄라 함은 중생의 마음을 따라서 일어나는 것
중생의 마음이 사라질 때 그 마음을 따라서 생긴 죄도 없어지니
죄도 사라지고 마음도 없어진 자리에 텅 빈 충만이 가득하면
이를 일러 진짜 참회라고 하니 다시는 허물이 있지를 않네.

‘사참’은 예불(禮佛)이나 송경(誦經)과 같은 신구의 삼업의 행위로써 하는 참회이다. 참회를 할 때는 먼저 내가 몸과 입과 뜻으로 지어온 온갖 나쁜 업들이 모두 오래전 세월부터 길들여져 온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에 말미암아 일어난 것임을 잘 알아야 한다. 그리고 몸으로는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죽이고, 남의 소유물을 몰래 훔치며, 잘못된 과보를 가져올 수 있는 어두운 관계들을 사람들과 맺고 사는 것을 참회해야 한다. 입으로는 이간질을 시켜 대중의 화합을 깨뜨리고, 험하고 거친 말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며, 명성이나 이익을 얻으려고 거짓말을 하고, 말을 화려하게 꾸며 자신의 이익을 얻고자 남을 현혹시키는 일들을 참회해야 한다. 뜻으로는 함부로 욕심내고 화를 내며 어리석은 마음을 갖고 사는 것들을 참회해야 한다. 이 신구의 삼업으로 지은 모든 허물을 몸을 던져 뉘우치는 것을 사참이라고 한다. 사참은 현생의 잘못만 참회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생에 지은 죄업까지 모두 참회하는 것이다. 사참의 뜻을 잘 설명한 게송을 보자.

아석소조죄악업(我昔所造罪惡業) 개유무시탐진치(皆由無始貪瞋癡)
종신어의지소생(從身語意之所生) 일체아금개참회(一切我今皆懺悔)
옛날부터 지은 죄가 한량없지만
이 모두는 알고 보면 탐진치 때문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모든 죄
제가 이제 정성 다해 참회합니다.

신구의 삼업을 다스려 죄업을 뉘우치는 사참도 중요하지만 이참을 해야 비로소 본디 마음자리를 찾을 수 있다. 죄를 만들어내는 중생의 마음 자체가 본디 실체가 없다는 이치를 꿰뚫어 보는 이참이야말로 진짜 참회이기 때문이다. 참마음은 본디 비어 고요해서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으며 죄를 지었다는 생각도 없다. 서산 스님은 말한다.

懺悔者 懺其前愆 悔其後過 愧者
責於內 愧發於外 然 心本空寂 罪業無寄.

참회(懺悔)란 먼저 지은 허물을 뉘우치고 다시는 똑같은 허물을 짓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일이다. 참괴란 안으로는 자신의 허물에 대하여 책임감을 느끼고 밖으로는 그 일에 대하여 부끄러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참마음은 본디 비어 고요해서 죄업이 붙어 있을 곳이 없다.

어리석은 사람들은 진심으로 뉘우쳤다고 하면서 똑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이것은 진정한 참회가 아니다. 마음에 묻은 때를 씻어내지 못하고서야 참회를 했다고 할 수 없다. 본디 고요한 마음자리로 돌아가 지난날 지은 허물을 씻어 버리고 욕망을 걷어내어 다시는 허물을 짓지 않는 것이 바로 올바른 참회이다. 제 허물을 알고 부끄러워하며 똑같은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수행자야말로 뒷날 이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될 것이다.
 

원순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