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하는 사람은 / 만공 스님
참선하는 사람의 시간은 극히 귀중한 것이라,
촌음(寸陰)도 허비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변소에 앉아 있는 동안처럼 자유롭고
한가한 시간이 없나니, 그 때만이라도
일념에 든다면 견성(見性)할 수 있나니라.
공부가 늦어지는 까닭은 시간 여유가 있거니 하고
항상 미루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니라.
자고 나면 '오늘은 죽지 않고 살았으니,
살아 있는 오늘에 공부를 마쳐야 하지
내일을 어찌 믿으랴!' 하고 매일매일
스스로 격려해 가야 하나니라.
밤자리에 누울 때 하루 동안의 공부를 점검하여
망상과 졸음으로 정진시간보다 많이 하였거든
다시 큰 용기를 내어 정진하되,
매일매일 한결같이 할 것이니라.
공부하다가 졸리거나 망상이 나거든
생사대사(生死大事)에 자유롭지 못한 자신의 과거를
다시 살펴본다면 정신이 저절로 새로워질 것이니라.
사선(死線)을 넘을 때 털끝만큼이라도
사심(私心)의 여유가 있다면 참선하는
기억조차 사라져 없어지느니라.
생사 윤회의 생활을 면하려고
출가한 중이니 만큼 참선법을 여의고 하는 일은
모두가 생사법(生死法)을 익히는 것이니라.
도라는 것이 따로 있는 줄 알고, 구하는 마음으로
참선한다면 외도(外道)에 떨어지게 되나니라.
설사 도인이 온갖 신통변화를 부리고,
죽을 때에도 불가사의한 이적(異蹟)을 보일지라도
이는 상법(相法)이니,
이런 상법이란 하나도 가히 취할 바는 아니니라.
믿음은 부처를 찾아 오르는 발판이기 때문에
몰아적(沒我的) 믿음의 발판을 딛고 부처를 넘어
각자의 자기 정체(正體)를 찾아야 하나니라.
선을 닦는 사람은 선학자(禪學者)의 행위를
엄숙히 가져서, 입을 열지 않고서라도
남을 가르치게 되어야 하나니라.
공부의 과정에는 지무생사,계무생사,
체무생사,용무생사의 네 가지 단계가 있는데,
용무생사에 이르러야 비로소
이무애,사무애하게 되는 대자유인이 되나니라.
지무생사(知無生死)
: 생사없음을 아는 것
계무생사(契無生死)
: 생사없는 경지에 계합하는 것
체무생사(體無生死)
: 생사없는 경지를 체달하는 것
용무생사(用無生死)
: 생사없는 경지를 내마음대로 쓰는 것
이무애(理無碍)
: 이치에 걸림이 없는 것
사무애(事無碍)
: 사물에 걸림이 없는 것
- 만공스님(1871~1946) -
1885년 14세때 경허스님의 제자.
1905년 이후 주로 덕숭산 수덕사에서 주석
1931년 금강산 유점산 금강선원 조실,
1933~35년 마하연 조실,
1936년 마곡사 주지
1946년 세수75세,법랍62세로 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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