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스크랩] “즐거이 정성으로 일하며 무심의 낙에 노닐라” (지해스님)

희명화 2011. 11. 3. 09:38

“즐거이 정성으로 일하며 무심의 낙에 노닐라”
[선지식을 찾아서] 성주 도솔암 주지 지해 스님




동화사 조실 진제스님의 맏상좌인 지해스님.

2009년의 한 해가 기우는 구랍 26일. 도솔암 가는 길은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차분히 정리하는 여정이 될듯 싶었다. 명절 때 마다 지나쳐 가고 오는 경부고속도로 김천나들목을 나와 네비게이션이 이끄는 ‘경북 성주군 금수면 영천리 1543번지’를 찾아가는 길은 자동차가 드문 한적한 시골 길이 한 시간 이상 이어졌다.

어릴 적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한 번도 와보지 못한 탓에 낯선 풍경들은 마음을 더욱 들뜨게 한다. 처음 마주하는 길은 길 위에서 태어나 길에서 법을 전하다 길 위에서 열반하신 부처님 제자들에게는 언제나 구도(求道)의 상징 그 자체다. 길 위에서 길을 묻는 구도자에게 길은 삶 자체이자 깨달음의 종착점을 간직한 마음의 고향이기도 하다.

마침내, 네비게이션이 안내한 도착지점인 금수면 영천리에서 천상산(天上山) 천상곡(天上谷) 골짜기로 들어가니 신천지가 펼쳐진다. 천상산은 마치 저 하늘세계에 동방 지국천, 남방 증장천, 서방 광목천, 북방 비사문천이 도솔천을 받들어 옹호하듯이 동 금오, 남 가야, 서 불령, 북 황악산으로 에워싸여져 있었다. 천상곡 위쪽에 자리잡은 도솔암은 좌청룡 우백호가 옹호한듯한 산세가 범상치 않은 도량임이 저절로 느껴진다.

도솔암은 신라시대 어느 도승(道僧)이 당신이 깨달은 진리를 조용히 나무 하고 농사 지으며 즐기면서 지은 고반정사(考槃精舍) 터에 자리를 잡았다. ‘고반(考槃)’의 뜻은 ‘열반ㆍ적멸의 세계를 살핀다, 즐긴다’는 뜻이다. 모든 번뇌가 다한 적멸의 세계를 일상생활 중에서 수용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천상곡의 낮은 고요하여 적멸하기 그지 없고, 밤하늘은 달과 별들을 소반(小盤)에 가득 담아놓은 듯하다 하니, 절터의 유래가 의미심장하다. 예전에 있던 고반사 건물은 불에 타 없어지고 불상은 다른 절로 모셔졌다. 그후 오랜 세월이 지나서 절터 밑 산골짜기에 마을이 들어섰는데, 절 이름을 따서 고반동이라 했으며 동네 입구 산자락 암벽에 ‘고반동문(考槃洞門)’이라는 옛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동네에 우연히 한 수좌스님이 찾아오니 주민이 무척 반겨서 하룻밤 묵게 됐다. 주민의 안내로 상곡(上谷)을 구경하다가 옛 성인의 숨결을 느껴 곧바로 걸망을 풀고 흙집을 짓고 농사 지으며 정진하게 된 스님이 바로 도솔암 주지 지해(智海) 스님이다. 스님은 주민의 간절한 바람과 스님의 구법(求法)일념과 중생을 다생(多生)의 부모로 섬기고 살피는 원력으로 길상도량을 열게 된 것이다.

행자의 안내로 지해 스님을 뵙고 삼배를 올리니, 스님은 엄숙히 합장한 채 ‘나무 불’하고 축원을 하신다. 스님은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나무 불’이라고 인사하기 때문에 ‘나무불 스님’이란 별명을 얻었다. 스님은 ‘나무 불’에 모든 악을 끊고 온갖 장애에서 벗어나 청정한 마음으로 해탈하라는 의미를 담아 만나는 사람들을 축원한다.


“절터가 범상한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도량을 새로 일군 인연이 궁금합니다.”
“불기 2534(1990)년 봄, 제방 선원에서 공부하다가 우연히 천상곡에 인연이 닿아 집 한 채를 얻고 밭떼기를 구해 농사를 짓기 시작했어요. 흙벽돌 2000장을 리어카로 네 달 동안 혼자 실어나르면서 흙집을 짓는데, 동네에서 매일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도와줘서 토굴을 잘 짓게 되었습니다. 너무나 고마워서 동네 반장님 사랑채에서 주민에게 원효 스님의 ‘발심수행장’을 비롯한 불경을 서당식으로 가르쳤더니, 주민이 절 일을 집안일처럼 돕게 되었습니다.”

지해 스님은 한 3년 정도 농사를 지어보니 농사의 깊은 의미를 알게 됐고, 낮에는 밭갈고 밤에 참선 하는 주경야선(晝耕夜禪)의 수행을 이어갔다. 낮에는 생명을 가꾸면서 일을 하고 밤에는 좌선으로 피로를 풀어가며 조사선의 전통인 ‘노동선’을 체험한 것이다.


“일을 하면서 비로소 아! ‘선(禪)은 이렇게 하는거로구나’ 하고 마음이 계합되었습니다. 자연으로부터 수계 받는 심정으로 허공처럼 크게, 대해처럼 넓게, 태산처럼 굳게, 태양처럼 밝게, 바람처럼 자유롭게, 대하(大河)처럼 꾸준하게 흘러가듯 나아가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자연과 대화하며 도량을 가꾸는 수행으로 한가하게 살다보니 어느덧 스무 해가 흘렀군요.”

지해 스님은 20여 년 가까이 주경야선의 치열한 토굴수행을 하며 재가자를 위한 주말 참선정진과 산사체험법회 등을 이끌어왔지만, 수좌로서의 길에 들어선 지는 무려 40여년에 달한다.

약관 20세에 동화사에서 하루 2시간씩 자며 정진하던 행자시절에 진제 스님(동화사ㆍ해운정사 조실)을 은사로 모시게 된 지해 스님은 당대의 선지식인 진제 스님의 맏상좌로서 묵묵히 수좌의 길을 걸어왔다.


은사스님의 가르침과 수행지도, 법거량 등에 대해 질문하자, 지해 스님은 행여나 은사스님에게 누가 될까 말을 아끼며, 한 마디만 하신다.
행자 시절, 동화사 말사인 은적사로 올라가는 길에 있었던 선문답이다.

일행 중의 한 수좌가 “어떤 것이 본래인(本來人, 불성)입니까?” 하고 묻자, 진제 스님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부처도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이 법거량을 보고 지해 스님은 스승을 더 깊이 믿고 평생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20여년간 선방에서 정진하다가 모든 인연을 끊고 토굴수행에 몰입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젊은 시절, 선방에 입방하면 도량문을 나서지 않고 등산도 하지 않은 채 죄복 위를 떠나지 않았지요. 그러나 어느 순간, 죽비소리와 공양 목탁소리, 종성소리, 법문시간에 쫓기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됐어요. 나를 잊고 밖으로 쫓겨다닌 셈이지요.”

깨달음에 대한 추구 역시 자칫하면 욕심과 조급함이 앞서 본심을 잃어버리고 헐떡이게 된다는 사실을 자각한 스님은 보다 철저한 수행을 위해 모든 반연을 끊고 토굴수행을 하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천상산에 인연처를 발견한 스님은 자연을 스승, 도반, 도량으로 삼아 정진하면서 비로소 깨달음에 대한 집착마저 놓게 되었다.

“창문을 열면 하늘이 코앞에 있습니다. 하늘 보고 나 한번 보고, 일하다가도 나를 바라보는 게 습관이 됐습니다. 옛날에는 알 수 없던 마음자리를 신선하게 쳐다보게 되고 무수한 과거생 동안 지은 허물의 뿌리도 보게 되었습니다. 조석 예불 때 10악참회를 하면서 더욱 올곧게 본래의 나를 살피며 밝고 조용하게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허물을 참회하여 고쳐가면 마음의 광명이 드러나는 일이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지해 스님의 수행이력은 40여년에 달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한참 전이다. 출가전에 이미 심출가(心出家)를 했기 때문이다.

성주 용암초등학교 5학년 때, 지해 스님은 <도덕> 책에서 부처님의 전생담을 읽고 ‘목숨 보다 더 소중한 진리란 게 있구나. 나와 남이 없는 세상, 니 집 내 집이 없는 보도 듣도 못한 세상이 있구나’하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이 어린아이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를 일체 하지 않은 채 멍하니 먼 산을 쳐다보거나 책을 즐겨 읽게 됐다고 한다.


진리에 대한 어린아이의 막연한 동경심은 성주농고(현 성주고) 2학년 때 비로소 싹이 돋는다. ‘일체중생이 부처로구나’하는 건방진(?) 생각이 저도 모르게 일어났다는 것이다. 소년은 일부러 비행청소년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려고 애쓰면서 마음속으로 이런 발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참선을 해서 깨달아 회상을 열었을 때, 이 인연으로 저 아이들도 함께 공부해 피안에 이르게 하여지이다.’

너무나 조숙했던 이 소년은 고등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성주 선석사로 들어가 불교공부를 하게 된다. 당시 절에는 노스님이 여러분 계셨는데, 한 스님으로부터 <초발심자경문>을, 또 한 분으로부터는 선(禪) 법문을, 또 한 분으로부터는 기도수행담과 포교에 대해 배우게 됐다. 이 때 불교의 기초를 다진 소년은 ‘일체중생이 부처 아닌 자 없구나’하는 인식을 하게 됐고, 밥 먹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구도심에 불타 한시바삐 출가하리란 결심을 하게 된다. 결국 소년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선석사 주지스님의 소개로 당시에 ‘젊은 도인’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진제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게 된 것이다.

“벌써 출가한지 40년이 흘렀어요. 행자 때 광목을 떠서 만든 가사의 본래 천이 조금밖에 남지 않고 새로 기운 천 조각이 대부분이 되었어요. 이처럼 무상한 것이 인생이요, 천 조각처럼 떨어져 나간 것이 자존심(我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금생을 헛 살았으니, 내생에는 한 조각 마음광명으로 먼지 없는 구도의 길을 걸으리라 재발심을 하게 됩니다.”

구랍 19일, 도량을 일군지 19년만에 대웅전 삼존불 점안식을 봉행한 도솔암이 새로 지은 절임에도 수 천년 지난 도량처럼 무게감을 갖는 것은 신도와 주민이 하나 되어 무량한 공덕의 탑을 쌓은 때문이리라. 도대체 주경야선, 노동선은 어떤 것이길래 야박하기로 소문난 사하촌 주민의 마음까지 움직인 것일까. 그 요령은 일을 하면서 6바라밀을 온전히 실천하는데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을 피해서는 안됩니다. 일이 곧 삶이 아니던가요. 일속에 보살의 구족한 바라밀이 있으니 성실히, 즐거이 일을 함에 모든 덕이 얻어집니다. 성실히 일하는 것이 모든 이웃을 이익 되게 하고 나의 삶을 윤택하게 하니 보시바라밀이 성취됩니다. 성실히 일하는 동안 신구의(身口意) 삼업(三業)이 단정하고 깨끗해 지계바라밀이 성취됩니다. 성실히 일하는 동안 널리 이해하며 참고 견디는 마음이 이루어지니 인욕바라밀이 성취됩니다. 성실히 일하는 동안 역경에 굴하지 않고 꾸준히 게으름 없이 노력하니 정진바라밀이 성취됩니다. 성실히 일하는 동안 잡념이 없어 일념이 흩어지지 않나니 선정바라밀이 성취됩니다. 성실히 일하는 동안 막히고 힘들 때 지혜를 내어 해결하니 지혜바라밀이 성취됩니다.”


지해 스님이 가르치는 참선은 행주좌와 어묵동정이 한결같이 바라밀행으로 이어지는 지혜와 자비가 구족된 살아있는 공부였다. 그래서 6바라밀의 실천은 생활속의 참선이 될 수 밖에 없다.

“보시로써 복밭을 일구고, 지계로써 심신을 깨끗이 하며, 인욕으로 이 마음 편안히 하고, 부지런히 도 닦으며 정진하고, 항상 마음을 비워 선정을 이루고, 모든 인연 밝게 비춰 큰 지혜가 납니다.”

일과 수행이 둘이 아닌 도솔암의 수행 원칙은 조석 참회예불과 일상속 육바라밀 수행, 주경야선 실천, ‘불조의 원력행’(佛祖願行) 학습 등으로 이뤄진다. 새벽과 오전은 참회예불과 참선을 하고, 오후에는 2~3시간 울력을 한다. 스님뿐만 아니라 절에 상주하거나 일시 머무는 대중은 모두 울력에 동참한다. 3천 평이 넘는 밭은 스님과 마을 주민이 무보수로 가꾼다. 절은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이자 일터로서, 수확한 작물들은 함께 나누는 기쁨도 누린다. 최소한의 것으로 근검절약하며 살되, 남은 것은 오직 도량을 장엄하며 사사 공양으로 수행대중을 외호하고, 모든 이웃에 부처님 자비를 회향하는데 쓴다.

이렇듯, 주민은 물론 신도들과 먼 곳에서 찾아오는 불자들을 모두 평등하고 편안하게 대하다 보니 도솔암은 어느새 전국에서 소문난 수행처이자 쉼터가 됐다. 병고에 시달리고 실의에 빠진 이들, 어쩌다 무명(無明)에 사로잡혀 도덕성을 잃고 악업 속에서 고뇌하는 이들, 집착을 버리고 꿈에서 깨어나 바른 길을 찾아 수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두루 찾아와 귀의할만한 곳이다.

하지만, 천상곡을 벗어나면 재가불자들은 다시 온갖 경계와 마주하며 결코 만만치 않은 공부를 지어가야 한다. 절에서 공부하던 때의 환희심과 자신감은 또다시 어디로 사라지고 세상사에 끌려다니며 욕망의 노예가 되어 헐떡일 수 밖에 없는 게 다수 재가불자들의 현실이다. 하기에 바쁜 일상사 속에서 마음공부하는 요체를 여쭙지 않을 수 없었다.

“마음이 삿되려고 할 때 그것을 따르지 말고, 마음이 음탕하려 할 때, 생각이 약해지려 할 때, 생각이 부귀해지려 할 때도 그것을 따르지 마십시오. 마음을 단속하여 마음이 사람을 따르게 할지언정 사람이 마음을 따르게 하지 마세요. 마음은 사람을 그릇되게 만들고,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아라한도 되고 하늘도 되며 축생도 되고 지옥도 되고 아귀도 되는 것이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마음이 만드는 것입니다.”

지해 스님은 수행자는 깨끗한 마음, 사유하는 마음, 지혜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한다.

“깨끗한 마음을 가지면 지혜가 생길 것이며, 마음에 지혜가 열리면 앎이 열립니다. 음욕을 생각하지 않고 미움을 생각하지 않으며 삿된 생각을 갖지 않으면 마음이 열립니다.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길은 생각하는 마음, 지혜로운 마음이니 음욕과 성냄이 없게 되어 마음을 깨끗이 하는 도를 얻게 됩니다.”

지해 스님의 고요하고 차분한 음성은 짧은 말속에 무궁무진한 진실을 담은 듯 했다. 인터뷰를 사양하던 스님의 하심(下心)을 상심(上心)으로 만들려 한 필자의 조작심도 스님의 천진(天眞)한 무심을 오염시킬 수 없는 노릇이다. 스님이 차를 나누며 들려준 설법도 귀한 법문이려니와 말없는 미소와 행동 하나하나가 법의 문을 여는 선지식의 지혜작용임을 실감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선문답이 아닌, 일상의 용어로 전하는 스님의 선법문에는 ‘평상심이 도(平常心是道)’인 조사선의 도리가 녹아있다.


진실한 언행은 편안한 가정 이루고
깨끗한 마음 밝은 미소 만복을 부르네
정성 모아 이웃 위함이 바로 사람의 길이니
가고 오고 말하는 가운데 본심(本心)을 잃지 말라.


지해 스님이 필자를 배웅하며 건네준 선시집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걸어야 할 지혜의 길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내 앞에 이르른 일 즐거이 정성으로 임하고 무심의 낙에 자유로이 노니소서.”

이와 같은 무념(無念) 바라밀행으로 일하고 설법하며 정진하는 스님의 삶은 필자와 같은 생활인들에게는 구구절절 가슴이 와닿는 생활선 법문을 제시하고 있음을 느꼈다. 도솔암(http://www.edosolam.com)의 산사체험법회(매월 셋째 토~일요일)와 계절별 수련법회, 정기법회를 통해 심신을 재충전하고 번잡한 일상속에서도 여여하게 수행하는 재가불자들이 무수히 쏟아지기를 발원하며 천상산을 발걸음도 가볍게 내려왔다.






지해 스님은

1950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나 20세에 동화사에서 진제 스님(동화사 조실)을 은사로 출가해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했다. 해인사, 동화사, 봉암사, 통도사, 수도암 등 제방선원에서 정진한 스님은 은사스님 뜻에 따라 잠시 선학원 중앙선원장과 부산 해운정사 주지를 역임하기도 했다. 1990년부터 도솔암을 복원한 스님은 현재 산사체험법회와 주말철야정진 등을 통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수행자를 지도하고 있다. 저서에 <마음의 고향에 돌아가야 하리> <세상에서 참 행복한 사람> <도솔암 이야기> 등이 있다.

 

현대불교신문 붓다뉴스 www.buddhanews.com

글ㆍ사진 김성우 기자 |
buddhapia5@buddhapia.com
2010-01-12

출처 : 求道歷程(구도역정)
글쓴이 : 푸른바다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