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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벚꽃이 한줄기 바람에 눈처럼 하얗게 하늘을 수놓던 날,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던 날 법수 선원에서 성수 스님을 뵈었다. 세곡동에 위치한 법수선원은 시민선방이 있는 보림도량으로 성수 스님께서 73년에 개원한 인연 깊은 곳이다. 성수 스님은 십 여년동안 법수 선원에 주석하여 도심의 사람들에게 스님 특유의 방식으로 법과 선을 널리 폈으며, 이곳에서 발심하여 출가한 이가 몇이나 된다고 한다.
올해로 세수 팔십일곱이신 성수 스님께 건강을 여쭈었더니 “한 계절이 들어오고 나갈 때도 차고 더운 기운이 서로 치성을 부리는 것처럼 사람도 그 계절에 따라 몸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지.”라고 하신다. 어제 미지근한 물에 목욕했더니 몸에 탈이 났는데 병원 갈 일은 아니란다. 구십 평생을 살면서 아직 병원 들고나는 일은 없으니 ‘시주밥 축내지 않고 도 닦은 것 아니냐’ 면서 웃으신다.
건강 비결을 물었더니 “불자들도 아침 3시에 일어나서 밤 9시까지 등을 땅에 안 붙이고 노력하면 마음이 밝아지고 몸은 빛이 나니 병원 갈일이 없을 거라.”고 한다. 몇 십년동안 한결같이 한 끼에 다섯 숟가락의 찰밥과 맵고 짜지 않은 찬을 드신다고 하니 소식(小食)이 그 비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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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먹고 많이 자면 병 안들 사람이 없어. 천성산에서 공부할 때 일 년 동안 뽕잎? 감잎? 솔잎? 칡잎 ? 닥나무잎을 뜯어 먹고 살았어. 그러고 나서 원효대사 토굴터에서 십년을 살았는데 쇠비름을 베어서 덮고 깔고 잤으며, 그때도 삼 년 동안은 풀잎만 먹었는데 건강에 아무 이상 없었어. 마을에서는 마음의 병이 들면 절로 수양하러 오는데, 스님이 병원에 간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여기고 부끄러워서 못가야 해. 부끄러워서 안 가다보면 싱글벙글 쨍쨍하게 살게 되고 그것이 활불(活佛)이지.”
성수 스님은 몸을 이루고 있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보살을 잘 쓰고 자성 삼보를 잘 관리하면 보살이 된다면서 먼데 가서 찾지 말라고 일러준다.
“낼모레가 ‘부처님오신날’이라고 야단법석을 떠는데 다 좋은 일이지. 형식적 축하보다는 진심으로 봉축해야지. 등을 밝히는 것은 마음의 어두움을 밝히기 위함인데 미한 중생이 밝은 지혜는 외면한 채 어두운 물질에만 묶여 있으니 답답해. 이 날을 기점으로 하여 앞으로는 자신의 위치를 깨닫고 노력하며 살겠다는 포부를 부처님 앞에서 기원하면 좋은 일이지. 오늘부터라도 부처님의 본을 받아 실천 수행하여 오늘이 바로 자신에게 ‘제 2의 탄생일’이 되도록 해야지.”
1975년 ‘부처님오신날’을 공휴일로 지정하는데 성수 스님의 역할이 컸다. 서울 시장인 김현욱씨와 불자국회의원들을 통해 박대통령에게 수차례 건의 하여 이루어진 일이었으며, 시민들로부터 서명날인을 받은 용지가 트럭 3대에 실어야 할 정도였단다. 그때가 성수 스님 마흔 한 살 때라 한다.
“공휴일로 지정된 그해 부처님생일잔치를 크게 벌였지. 서울시장이 행사비로 쓰라고 이십만 원을 내놓았는데 돈 100마지기 값이었어. 삼립식품공장에 보름달인가 뭔가 하는 빵 3만 개를 주문하여, 만개는 조계사를 찾는 신도들에게 나누어주고 서울 시내 111개 양로원에 나누어주었지. 그날 하루 종일 서울역에서 빵을 나누어주었는데 서울시가 들썩거릴 정도로 큰 잔치였어.”
성수 스님은 조계사 주지할 때 ‘종교의 장벽을 트자’고 제안해서 종교협의회를 만들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종교협의회를 갖기 전에 신부, 목사, 수녀 오십여 명을 조계사로 초대를 했어. 내가 초대를 했으니 턱 나가서 ‘내가 열아홉 살에 중이 됐는데 내 부모보다 부처님이 너무 좋아서 중이 됐다.’고 했더니 그들 표정이 ‘저거 봐라. 부처 자랑부터 늘어놓는다’고 쓰여져 있어. 45년 동안을 그렇게 좋아하며 믿고 살아왔는데, 오늘에 와서 가슴에 손을 얹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저 부처한테 몽땅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더니 그 사람들이 놀라 자빠지는 거야. 부처님은 속세에서 네 가지 큰 죄를 지은 분이라고 하니 내 말을 백프로 믿는 눈치데. 그들에게 ‘아담과 이브가 먹지 말라는 선악과(善惡果)를 따 먹어서 천당과 지옥으로 떨어졌다고 했는데 선악과 먹기 전에는 거기가 어디냐?’ 하고 물었더니 아무 말도 못하고 땅에 탁 엎드리는 거야. 그래서 그거를 모르면 나처럼 속는 놈이 된다면서 내 속았던 것까지 보태가지고 그들한테 폭 덮어 씌워 버린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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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왜 속세에서 네 가지 큰 죄를 지은 분인지 궁금했다.
“부처님 욕을 하면 부처님이 한 방 치시겠지만, 부처님 인격을 내가 잘 알기 때문에 야단치시지는 않으실 것이라. 네 가지 죄란 첫째는 국사를 돌보지 않고 출가했으니 부왕의 명을 거부한 역적죄요 둘째는 부모의 뜻을 거역했으니 천추만대의 불효죄요, 셋째는 결혼한 젊은 부인을 버린 배신죄, 넷째 라후라를 낳고도 기르지 않고 자식 버린 죄이지. 보통사람으로는 감히 꿈도 꾸지 못할 네 가지 죄를 짓고 성을 넘어 야반도주를 했으나 삼천년이 지나도록 부처님을 성인으로 받들어 모시고 있잖아. 네 가지 죄를 지었어도 삼천 년 동안이나 존경받는 그 이유가 뭔지 한 번 생각해 보란 말이야. 부처님은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통해 사람들이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왜 저렇게 비참하고 억울하게 죽어야 하나 하고 깊이 생각하고 고민했어. 안 죽는 법을 알기 위해서 육년이나 찾아다녔으나 가르쳐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스스로가 연구했지. 그렇게 하여 좌부동하고 앉았는데 삽시간에 육년의 세월이 또 지나간 것이지. 부처님은 확실히 모르고 크게 몰랐기 때문에 아주 크게 깨달을 수 있었어. 그러니 법당에서 절 한 자락을 하더라도 부처님 뜻을 알고 해야지. 물어보고, 알고 살아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도 물어보지도 않고 넙죽넙죽 절만 하는 것을 보면 장관이야. 모르면 묻기라도 해야 하는데 묻지도 않아.”
모르면서 묻지도 않는다는 말미 끝에 “영산회상에서 부처님이 꽃 한송이를 들고 있으니 가섭존자만이 미소 지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어떤 미소인지 생각해 보았느냐?”고 한다.
“선을 공부한다는 사람들은 염화시중(拈花示衆)때 가섭의 웃음이 미소(微笑)인지 비소(非笑, 비난하는 웃음)인지 흑백을 가릴 줄 알아야만 해. 그래야 선객이라 할 수 있지.”
자신의 고유한 생각은 알려고도 하지 않고 남이 뱉어놓은 말만 무작정 따라가니 어느 세월에 자신과 상면(相面)하겠느냐면서 걱정의 눈초리로 바라보신다.
“싯다르타태자가 태어나자마자 일곱 걸음을 떼면서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 했는데, 무슨 뜻인지 아는가?” 하고 묻는다. 연이어지는 스님의 기습질문이다. 성수 스님 앞에서는 뻔한 답을 하기보다는 묵묵부답이 차라리 나은 일이다.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 천상천하에 둘도 없는 제일 귀하다는 뜻이야. 자아발견을 좀 하고 살자는 것이지. 자기 자신을 모르면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물을 모르는 것과 같은 것이여. 밥 잘하는 사람은 밥솥과 대화하고 나무 가꾸는 이는 나무와 대화하는데 자기를 지배하고 있는 자신과는 대화할 줄을 모른다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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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수명월난지난 심중활불난봉난 (潭水明月難持難 心中活佛難逢難)
산상기암고불시 광야현풍전묘법(山上奇岩古佛示 廣野玄風傳妙法)
물에 뜬 저 달은 가져보기 어렵고/ 마음속에 산 부처 만나기 어렵네.
산위에 기암은 부처 같고/ 넓은 들판에 부는 사람은 묘한 이치 전해주네.
성수 스님은 열아홉 살에 원효대사 같은 도인이 되겠다고 집을 나와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일 년 동안 도인을 찾아다녔지만 만날 수 없었기에 범어사에 가서 “큰 중 나오라”라고 소리 질렀다.
“그 넓은 절이 떠나가도록 소리소리 지르니 범어사 중들이 다 나왔지만 ‘새끼 중 말고 어른 중 나오라’고 하니 나중에 주지 스님이 나오데. 왜 그러느냐고 하길래 ‘도인을 찾아 일 년 동안 다녀보니 고대광실 같은 집에 살면서 공부안하는 중들 밖에 없더라. 결혼 안해서 나라에 해를 끼치고, 놀고먹으니 국가에 손실만 주니 다 때려죽이려고 그런다’했더니 그 주지 스님이 땅에 엎드려서 일어나지도 않고 한 나절을 눈물 흘리는 거라. 좀 미안한 생각이 들데. 그때 주지 스님이 동산 스님이신데 5년 후에 범어사에 도 닦으러 갔더니 상좌들도 다 있는데 나한테 살림을 맡기데. 백 명이 넘는 대중들이 살았는데, 한 달에 한 번씩만 장을 봐다 날랐어. 공부해야 하는데 장에 자주 가면 쓰나. 한 번 가면 트럭 한 대 그득하게 실어왔어. 그걸 보고 동산 스님이 놀라시데.”
성수 스님의 서슬 푸른 기상과 삼강처럼 큰 뱃장과 포부를 당할 자가 어디 있겠는가 싶다. 성수 스님은 조계사, 범어사, 해인사, 고운사, 표충사 등 6개 본사급 주지 소임을 맡았는데 그 소임도 딱 일 년씩만 했다. 그동안 지은 절만 해도 70여 채가 넘지만 모연문 한 번 돌려본 적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기도나 축원을 하지도 않았단다. 스님은 참으로 탁월한 재주를 지녔다고 하니 그것은 재주가 아니란다.
“돈을 깨끗하게 잘 써주면 돈이 인사하고 따라다녀. 사람이 돈을 따라다니면 천해. 돈이 사람을 따라 다녀야지.”
성수 스님은 불살생(不殺生)의 뜻을 아느냐고 물으신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것을 왜 물으실까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이 스님께서 말씀을 이어갔다.
“전부 소나 개, 벌레 등 타(他)를 죽이지 말라고 하는데 아니야. 세상 사람들은 모두 어리석어서 각자 자신에게 해당하는 말인 줄 모르고 남의 목숨만 죽이지 않는 줄 알고 있어. 부처님이 중생을 턱 보니 ‘나고 죽음의 꿈을 깨지 못하므로 너무 애처로워서 중생은 나고 죽음의 고해바다에서 벗어나라’고 불살생을 말씀하신 것이지. 파리 한 마리는 죽이기 안타까워하면서 자신은 하루에도 수없이 죽고 사는 것을 모르니 참으로 안타까워. 부처님이 우리 중생을 위해서 ‘죽지 말라’고 간곡히 설한 말씀이야.
불살생이 참으로 나의 일인 줄 알아야만 조금이라도 생사에 겁을 낼 터인데 눈이 밝지 못하여 남의 일로만 생각하는 거라. 타(他)를 죽이지 않겠다는 생각 이전에 내가 안 죽을 연구부터 해야지. 정말 죽기 싫다면서 부처님께 안 죽는 도리를 알려달라고 간이 타도록 애원해봐야지. 그래도 안 알려주면 알고 싶은 마음에 한이 맺히고, 알고 싶은 욕심이 펄펄 끓어올라야지. 안 가르쳐 주면 왜 안 가르쳐 주냐면서 주먹으로 부처 콧등을 한 대 쥐어박을 정도는 돼야 생사해탈의 맛을 볼 수 있지. 생사해탈의 맛을 보는 자가 바로 부처님의 뜻을 아는 산 제자라 할 수 있지. 생사 밖의 도리가 다 여기 있어.”
불살생 이 석자가 선법(禪法)인데, 이 선법만 확실히 알면 생노병사(生老病死)의 노예가 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놀다가 자기 마음대로 가는 것’이라 한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중생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간절한 법이란다.
“쇠가 쇠를 먹고 물이 물을 먹으며, 바람이 바람을 먹으며, 이웃이 이웃을 괴롭히며, 불법(佛法)은 불자가 해치고, 내가 나를 망치는 것이지. 나를 망치고 짓밟는 이는 오직 나일뿐 다른 이가 더럽힐 수는 없음을 명심해야 돼.”
중생이 부처가 되지 못하게 하는 것도 내 속에 있고, 부처가 중생놀음 하는 것도 남이 아니라 바로 내 탓임을 좀 알아야 한다면서 이젠 남을 원망하는 그런 소리는 하지 말라고 한다.
“부처님은 도 닦을 때 새가 와서 머리에 똥을 싸도 원망안하고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항상 생활했어. 우리가 현재 비 안 맞고, 옷 안 벗고 사는 그것이 바로 복 아닌가? 행복하게 사는데도 불평불만이 많은 것은 욕심이 끝없기 때문이야. 부처님께서 ‘만족심이 제일 큰 복’이라 했어. 마음속에서 부족하다는 생각을 내면 낼수록 쌓아 놓은 물질에 휘말려 정신까지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야. 남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면 참회를 꼬박꼬박해서 불평 없는 인간, 원망 없는 인간이 되도록 원을 세워서 노력해야지. 인도의 가난한 안타라 여인은 여덟 달 동안 일한 품삯으로 작고 보잘것없는 등을 올렸지만, 정성을 다했기에 돌풍이 불어도 꺼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이참에 좀 새겨들어놔.”
‘어려울 때일수록 물질이 담긴 좋은 등보다는 혜를 밝히겠다는 원이 담긴 등을 켜야 한다’는 성수 스님의 말씀은 시름에 젖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또 하나의 등불이 되어 줄 것 같다.
성수 큰스님 수행이력
1944년 양산 내원사에서 성암 스님을 은사로 득도. 48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 67년 조계종 총무원 포교부장 역임. 78년 세계불교지도자 대회 일본주최 한국 대표로 참가. 조계사, 범어사, 해인사, 고운사, 표충사 등 주지역임. 81년 조계종 총무원장 역임. 94년부터 2008년까지 조계종 전계대화상 역임. 지금은 조계종 명예원로의원이며, 법수선원 ? 황대선원 ? 해동선원의 조실이다. 저서로는 <선문촬요>, <불문보감>, <선행문>, <정행문> 등 다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