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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정릉의 삼각산 기슭에 자리잡은 보림선원. 주변에는 고층 아파트와 민가들이 보이지만, 숲으로 둘러싸인 산 중턱에 위치하다 보니 고즈넉한 산사 분위기가 나는 아담한 절이다. 한국의 유마 거사로 불린 백봉 김기추(白峯 金基秋, 1908∼1985) 거사의 제자들로 구성된 보림회의 근본도량인 이 곳에는 백봉 거사의 도반이자 제자였던 묵산 큰스님이 출ㆍ재가 선객들을 지도하고 있다.
구랍 30일부터 1월 5일까지 제70회 일주일 철야용맹정진을 회향한 보림선원은 유서 깊은 도심선원으로 잘 알려져 있다. 35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참선법회는 거사선풍(居士禪風)을 일으킨 백봉 거사의 테이프 법문 듣기와 좌선을 병행하며 1주일간 자지 않고 참선하는 수행프로그램이다. 철야정진 기간 내내 묵산 큰스님은 미수(米壽, 88세)의 고령에도 잠을 자지 않고 수시로 지도점검을 하며 재가 수행자들과 함께 법회를 회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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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6일, 보림선원 일주문에 들어서니 얼룩 멍멍이가 개집에서 나와 왈왈 짖는다. 지난 해 여름 일주일 철야정진에 동참했던 기자를 알아보았는지, 멍멍이는 사진기자에게만 겁을 준다.
조실방에 들어서니 큰스님이 기자를 알아보시고 반갑게 맞이한다.
“난 또 누구라고. 앉으시오.”
큰스님은 여전히 건강하고 목소리도 우렁찼지만 귀가 어두워지셔서 대화할 때는 큰소리로 고함치듯 해야만 했다. 하지만 질문을 알아들으면 폭포수 같은 장광설(長廣舌)로 법문을 토해내셨다. 말귀를 못 알아들 때면 필담(筆談)을 섞어가며 한 대담은 오히려 박진감을 더했다. 쩌렁쩌렁한 큰스님의 목소리와 유쾌한 웃음이 문답에 끊임없는 긴장감을 준 탓이다.
큰스님은 예상대로 일주일 철야정진에 대한 소감으로 말문을 여신다.
“이번 일주일 철야정진에는 30명이나 동참했습니다. 국민대 총장을 지낸 분과 의정부지원 판사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아주 훌륭하게 정진을 잘 했습니다. 이번에 나온 백봉 거사님의 법문은 <금강경> <선문염송> <선시> 등을 설법한 것이지요. 주 내용은 허공이 하나이니 지도리(樞 모든 것의 근본)도 하나요, 생명도 하나라는 공도리(空道理)를 설한 것입니다. 내 자체가 허공이고 부처다 하는 걸 철저히 실감해서 깨달아야 한다는 주옥같은 법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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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께서는 이번 용맹정진을 회향하면서 어떤 법문을 하셨습니까?
“저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법문을 안했습니다. 다만 이런 말은 했지요. ‘삼세제불과 역대조사가 다 틀렸다. 백봉 거사도 다 틀렸다. 천하 노화상도 다 틀렸다. 억(喝)!’”
-그럼, 큰스님만 옳으신 겁니까.
“하! 하! 하! 청정법신은 내외가 없고, 거래(去來)ㆍ생사가 끊어진 광명이자 묘용(妙用)도리예요. 지식과 관념으론 불법을 의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공에서 머물며 생활하지만, 자기 살림살이를 헤아릴 수 없어요. 불가사의하고 불가설(不可說)한 것은 부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죽는다 해도 죽음이 아니고, 산다고 해도 삶이 아닙니다. 생사와 사람 자체가 공하고, 범부와 성인이 모두 공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인생문제를 진실로 느끼고 깨달아야만 일대사를 해결할 수 있어요. 달마 스님이 9년간 묵언하며 면벽정진을 하고 서산 대사가 10년간 용맹정진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서산 대사는 한 글자도 설한 바 없는 도리를 이렇게 설했지요.
천계만사량(千計萬思量 천 가지 계획 만 가지 생각)
홍로일점설(紅爐一點雪 붉은 화로 속 한 송이 눈일세)
니우수상행(泥牛水上行 진흙소가 물위를 가니)
대지허공열(大地虛空烈 하늘과 땅이 갈라지네).”
-이 게송에서 진흙소는 무엇입니까?
“말과 생각으론 미치지 못하는 각(覺)의 자리예요.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 동쪽 산이 물 위로 간다)과 같은 도리지요. 몸뚱어리를 움직이게 하는 게 마음이어서 견문각지(見聞覺知)하는 자리가 자성이요 불성이요 심성 자리인데, 자기 자체를 알 도리가 없어요. 절대성으로서의 인간주체인 주인공이 청산(靑山)도, 백운(白雲)도, 우주도 창조합니다. 마음을 잘 쓰면 극락이 펼쳐지고 잘못 쓰면 지옥이 벌어져요. 내 마음에서 극락과 지옥을 창조하고 수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는 수 만명의 스님이 있고 2000만 불자가 있는데, 국민들이 지혜롭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참다운 불교 지도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견성한 사람들이 다 돌아가시고 없기 때문이기도 해요. 전강 스님이나 설봉 스님, 백봉 거사 같은 도인들이 살아계실 때는 훌륭한 설법으로 많이 교화가 되었지요. 우리는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사계절을 느끼고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일을 하는 가운데 철저하게 자기 본래면목을 깨달아야 해요. 불교는 지금 현실에 즉(卽)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공부거든요. 과거나 미래에서 그 무엇을 찾는 건 망상일 뿐입니다.”
-국내외에 불어닥친 경제 한파와 전쟁과 갈등으로 사람들은 큰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인류가 희망을 갖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요.
“원효, 의상, 범일, 서산, 사명 대사와 같은 대도인들이 많이 나와야 하고, 또 그렇게 될 것입니다. 현재는 물질로 고통을 받고 남북이 분단되고 지구촌에 전쟁이 끊일 날이 없지만 멀지 않아 남북통일과 세계평화도 이뤄질 거예요. 사해동포(四海同胞)의 세상이 되려면 무엇보다 화합이 이뤄져야 해요. 사람이 없다면 지구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총ㆍ칼이 필요 없는 세상이 반드시 오리라 생각합니다. 악을 짓지 말고 수행으로 덕을 닦고 선근을 심어야 해요. 불법인연이 지중함을 알고 12시중(時中)에 불법을 머리에 새기고 수행해야 합니다.”
-하루 종일 불법을 잊지 않고 공부하기 위해서는 일과 수행이 둘이 아니어야 할텐데요. 예를 들어, 운전하거나 일할 때 화두공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동차를 운전할 때 화두 들면 큰일 나지요. 운전할 때는 운전을 잘 하는 게 화두입니다. 정진할 때는 좌선을 잘 하는 게 화두이듯이, 자기 목적에 충실하게 몰두하면 바로 그 자리가 천당이 됩니다. 물론 공부에 힘을 얻어 어묵동정(語默動靜)에 매(昧)하지 않는 힘을 얻으면 무엇을 해도 화두가 되지요. 힘이 순숙(純熟)해지면 자성이 어둡지 않고 성성(惺惺)히 깨어있게 되거든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내가 극락이다’, ‘내가 부처이자 우주의 주인공이다’ 하는 신심을 갖고 자기 연마를 하면 이 자리가 바로 불국토입니다.”
-늘 깨어있어야 한다면, 잠잘 때는 어떻게 공부를 지어야 합니까?
“깨어있을 때 힘을 얻어야 잠 잘 때도 공부가 되지. 잠이 들어도 잠에 치우치지 않고 성성해서 매하지 않아요. 옛날 서산 대사도 용맹정진 할 때 10년 동안 잠을 안 자고 산발(散髮)을 이룰 정도로 공부해서 새가 머리에 둥지를 틀었다고 할 정도니까요.”
-스님의 하루 일과(日課)가 궁금합니다.
“나는 일과가 없어요. 오직 자성을 회광반조(廻光返照)하면서 몸뚱어리 버릴 때 깨끗하게 가려고 발원하고 있습니다. 내생에는 훌륭한 스승을 만나 부처님과 같은 대도(大道)를 성취해 중생 교화에 나서리란 원력을 세울 따름입니다.”
-백봉 거사님과 큰스님께서는 ‘허공’을 자주 말씀하셨는데, 허공이란 뭡니까?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을 버려서 체득되는 공도리를 뜻합니다. 4상(相)을 버리지 못하면 공도리를 못 굴리고 생사해탈을 못 해요. 아공(我空 나라는 것이 공하다) 법공(法空 일체법이 공하다) 구공(俱空 아공, 법공 마저 공하다)의 삼공(三空) 도리를 설한 경이 <금강경> 아니겠어요.”
-큰스님께서는 ‘허공을 삼켰다’ ‘허공을 부셔버렸다’는 법문을 자주 하셨는데, 무슨 뜻입니까?
“이것은 직접 체험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 말로는 못해요. 우리가 웃고 울며 살아가는 것은 진공(眞空)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이거든요. 마음을 잘 써서 덕과 지혜를 닦아 인생문제를 굴려나가야 해요. 불교방송이나 신문에서 좋은 법문을 많이 내보내니 차츰 심성이 정화되고 계발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큰스님, 아까 절에 들어오는데 개가 멍멍 짖었는데요,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가 개노릇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몰라. 하하! 부처님께서는 난생(卵生), 태생(胎生), 습생(濕生), 화생(化生) 등 12유생(類生 중생이 태어나는 열두 가지 형태)을 전부 열반에 들게 하겠다고 하셨어요. 개도 불성이 있으니까 성불시켜야 한다는 거요. 개는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도 치고 도둑이 오면 짖기도 하는데, 그걸 잡아먹으니 눈물 날 일이지요.”
-부처님은 개에게 불성이 있다 하셨는데, 조주 스님은 왜 없다고 하셨을까요?
“지식적인 이해로는 설파할 수가 없어요. 보기에는 달라 보여도 같을 수 있고, 같아 보여도 다를 수 있거든.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 공안에 대해 조주 스님은 ‘내가 청주(靑州)에 있을 때 삼베로 옷을 지었는데 무게가 일곱 근이었지’ 라고 대답했고, 고봉원묘 스님은 ‘개가 끓는 솥가마를 핥는다’고 했어요. 그래서 나는 전강 스님에게 가서 두 선사의 대답에 대해 평을 해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스님은 ‘똑같다’고 그래요. 하지만 나는 ‘같지 않다’고 부정해 버리고 나왔습니다(‘있다 없다’, ‘같다 다르다’는 말 따라 가서 분별해서는 안된다).”
-두 대답이 어떻게 다르다고 보셨는지요.
“조주 스님이 고봉 스님에게 한 방망이 맞았다고 볼 수 있지요. 조주 스님 회상에서 공부하던 행자가 ‘무(無)자’ 화두를 깨친 후 ‘스승의 할미가 본래 여인입니다(師姑元來女人做)’ 라고 말해서 인가를 받은 적이 있는데, 한번 참구해 보세요.”
-끝으로, 불자들에게 기축년 새해 덕담을 부탁드립니다.
“사람 몸 받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고 감사히 여기십시오. 바른 법을 만나 진리를 깨닫는 공부하는 것이 가장 행복한 길입니다. 마음에 보리종자를 심어 늘 닦아나가는 생활로 도업(道業)을 이루시길 바랍니다.”
백봉 거사가 입적한 지 2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묵산 큰스님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거사를 대신해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닌 불이법문(不二法門)을 설하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오늘 내가 만난 선지식이 백봉인지, 유마인지, 아니면 허공장보살(虛空藏菩薩)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멍! 멍!”
절 문을 나서는 순간, 뒤에서 또 개가 짖는다. ‘조주 무자’ 한번 박살내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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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산 스님은
1922년 제주도에서 태어나 40년 백양사에서 만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43년 광명사에서 금륜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44년 만암 스님으로부터 비구계를 수지했으며 59년 해인사에서 인곡 스님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았다. 이후 해인사 보문사 수덕사 칠불암을 비롯해 오대산 등지의 선원에서 70세까지 수행정진했다. 75년 서울 정릉에 보림사를 창건했으며, 96년부터 매주 토요일 재가불자들의 주말철야정진을 지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