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판단을 하지 말고 그대로 '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라
선지식-(재)행복마을 이사장 용타 스님
날이 맑았다. 경남 함양의 시골길은 하늘과 풀과 바람이 뒤섞여 고고하게 빛났다. 재단법인 행복마을 이사장 용타 스님을 찾아가는 길. 선지식을 찾아가는 길이어서 일까 자연은 그저 '있는 그대로' 아름다웠다.
스님은 현재 고즈넉한 전원을 자랑하는 행복마을에서 29년째 '동사섭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동사섭(同事攝)이란 '사섭법(四攝法)' 중 하나로 보살이 중생과 더불어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모두 함께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전달하고 개개인이 스스로 명상을 통해 행복해지는 것. 그것이 스님이 동사섭 프로그램을 보급하는 목적이다.
스님을 만나자 마자 행복에 대해 법문을 청해들으려 했더니, 기자에게 꼭 해야 할 말이 있다며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우리 모두 생태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해요. 일각에서는 10년 안에 지구 종말이 올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있어요. 남ㆍ북극의 빙산이 녹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잖아요. 이것이 사실로 다가온다면 시급한 문제가 아닐 수 없죠. 그러니 신문에서 환경문제를 근원적으로 다뤄주기 바래요."
스님이 우리 삶의 제반 조건인 환경문제에 대해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것 역시, 이 조건이 성립돼야 행복이니, 열반이니 하는 문제들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일 터. 그 큰 문제들을 공감하며 우매한 중생은 '현실적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청했다.
"행복하고 싶다면 지금 바로 행복하면 됩니다. 지금 바로 행복한 상태에 있어요. 현재에 있는 행복을 확인하는 것이 '행복론 1번'입니다. 지금 확인되면 그게 행복한 겁니다. 마치 현재 행복하지 않은 것처럼 해 놓고 무슨 준비를 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해선 안 됩니다."
스님은 이어 '천국론'을 꺼냈다. 내가 지옥에 있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스님이 하나 당부하는 것은 '자가(自家)천국'을 평소에 꾸준히 구축하라는 것이다. 스님은 그러면서 "진정한 의미로 세상을 천국으로 만들고 싶다면 현재의 내가 천국인가, 정말 활구적(活句的)으로, 진정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이것을 간단하게 '동심원 세 개'로 표현했다. 가장 작은 원은 자가천국, 그 다음 원은 소속공동체천국, 그 다음은 세상천국.
스님의 법문 특징은 일상적이면서도 불교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다는데 있다. 스님은 '활불교'를 중시한다.
"부처님이 대각을 성취하신 후 녹야원의 5비구를 비롯, 평생 수천 번을 설했던 4성제ㆍ12연기ㆍ8정도를 그대로 이해하고 실천한다면 바로 그것이 활불교입니다."
스님은 부처님의 초기불교인 4성제ㆍ12연기ㆍ8정도와 달마 이후의 선불교를 통합, 현재 시행 중인 동사섭수련 프로그램을 개척했다. 수련 프로그램 중 일부를 알려달라 부탁드렸다. 그러자 스님은 '나지사' 명상법을 이야기한다. '나지사'란 '구나' '겠지' '감사'로 정견에서 정사유로 이어지는 명상법을 한 글자씩 따서 만든 것이다.
"불행의 구조는 간단합니다. 내 인식주체가 무엇을 대함에 있어 그대로 수용하지 못할 때 괴로워집니다."
스님은 이럴 때 위빠사나를 하면 된다고 강조한다. 어떤 판단을 하지 말고 그대로 '아, 그렇구나'하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누군가 비난하면 보통은 감정적으로 저항하기 마련이다. 그 저항할 때 느껴지는 그 감정이 불행이다. 그 '아, 그렇구나'하고 수용하면 마음의 중심이 흔들릴 까닭이 없다. 그런 다음, 누군가 나를 비난할 때는 사정이 있을 것이란 것을 헤아릴 수 있어야 한다. '사정이 있다면 비난 할 수도 있겠지'라고 생각하는 것, 그것이 '겠지'다. 그러고 나면 '그만하게 끝내줘서 감사하다'는 마음이 들어야 한다. 더 크게 비난할 수도 있지만 그 정도로 그쳐준 것 자체를 감사한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잠깐 기자도 '나지사' 명상을 해봤다. '탐진치(貪嗔痴)' 3독 중 성내는 마음이 서서히 사라져 갔다. 일상에서 화내는 마음만 사라져도 얼마나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스님은 현 불교계에 대해 조금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특히 스님은 '관념불교'와 '신비주의'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승불교로 오면서 초기경전이 너무 묻혀버렸어요. 화두타파, 염불삼매에 들어가 도만 통하면 된다는 생각이 온 불제자들의 머릿속에 박혀버렸습니다. 그 좋은 8정도가 있는데 그 중 하나일 뿐인 정정(正定), 즉 정신집중법 하나가 행법의 전부인 것처럼 계속 지배해 왔어요. 또 우리불교가 너무 신비에 젖어있어요. 부처다, 니르바나다 하는 것은 신비가 아니에요. 석가모니 근본불교에 신비가 어디 있습니까. 석존 가르침의 강령에 해당하는 사성제 하나만 봐도 누구나 납득이 되는, 극히 이성적인 가르침입니다."
스님은 팔정도 중에서도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를 중시한다.
"이런 궁금증이 혹 없었습니까? 석존께서 보리수 아래서 큰 깨달음을 터뜨리셨는데, 무슨 방편으로 그 큰 깨달음을 얻어셨을까 하는 것 말입니다. 출가 후 6년간을 그 당시 세상에 떠도는 모든 방편들을 다 섭렵하셨고, 아라라칼라마, 웃다카라마풋다와 같은 최고의 영성 스승을 모시고 스승의 경지인 무소유처정, 비상비비상처정과 같은 드높은 경지를 두루 깨달으셨고, 마지막으로 고행림에 들어가 극고의 고행을 끝장까지 가보시고도 원하는 생사해탈을 얻지 못하시자 결국은 스스로를 스승삼고 보리수 아래 앉으셨습니다. 이때 무엇을 하셨느냐 그것입니다. 앉아서 무언가를 했으니 큰 깨달음이 왔을 것 아닙니까. 저는 그것이 상당한 화두였습니다. 그 때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에서 무엇을 했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치를 궁구한 것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는 내가 부처님을 만난 것처럼 확신하는 부분입니다. 부처님도 사유를 통해 '연기(緣起)'라는 이치를 이해하고 파지(把持)한 것입니다. 연기의 이치가 사유의 결과물로 나온 것이지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스님은 8정도 중 정사유를 강조하며 각자의 개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성'에 의지해 제대로 된 판단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정사유를 통해 정견(正見)을 정립해야 하고 정견을 삶의 기준으로 하여 삶을 운영해야 합니다. 모든 삶, 모든 수행에 있어서, 부처님의 기초 가르침이신 팔정도의 정견(正見)과 정사유(正思惟)는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는 것이 아닙니다. 정견이란 바른 가치관입니다.바른 가치관을 바탕으로(正見) 바르게 생각하고(正思惟), 바르게 말하고(正語), 바르게 행동한다(正業), 팔정도(八正道)의 1~4번입니다. 얼마나 상식적이고 이성적인 가르침입니까? 그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삶 자체가 수행이란 점을 잊지 맙시다."
요즘 스님은 궁극적인 기도를 하고 있다 밝혔다.
"우주신의 마인드에 상생(相生) 패러다임을 장착해야 합니다. 약육강식(弱肉强食), 적자생존(適者生存)식의 패러다임을 훨훨 넘어선 상생 패러다임입니다. 바로 내일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고 한 스피노자 정신으로, 우리 모두 우주 흐름의 한 복판에 상생 패러다임이 장착도어지기를 기원합시다."
스님을 뵙고 나오는 길. 스님이 지금까지 해오신 프로그램의 일부만을 접했을 뿐이지만 활어로 되새긴 불교의 가치는 강열한 여운으로 다가와, 가슴 속 깊이 남았다.
용타 스님은
1964 년 8월 청화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1971년 전남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1974년까지 일선 고등학교 독어교사로 봉직했다. 이후 교사생활을 접은 스님은 1974~1983년 20안거를 결제수선 한 바 있다. 현재는 (재)행복마을 이사장으로, 1980년부터 5박 6일 영성수련회 '동사섭 법회'를 진행하고 있다. 귀신사 회주, 미국 삼보사 회주, 성륜문화재단 이사 등도 겸직하고 있다.
함양/글=김강진 기자ㆍ사진=박재완 기자
현대불교신문 [2008-06-11]
'불교교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분별심 붙지 않는 그 마음으로 살 수 있다면 닦을 필요도 없다 (0) | 2011.11.03 |
---|---|
[스크랩] “안다 해도 아직 문밖의 사람이요, 모른다 하면 송장입니다.” (0) | 2011.11.03 |
[스크랩] "일체가 환상임을 뼛속깊이 자각해야 일체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설정스님) (0) | 2011.11.03 |
[스크랩] "평상심이든 깨달음이든, 그 무엇이든 생각을 일으켜 구하거나 바라면 어긋나고 만다"(혜국 스님) (0) | 2011.11.03 |
[스크랩] 설우 스님 (0) | 2011.11.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