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명시

나 목 / 신경림

희명화 2025. 1. 16. 15:25

                나  목

 

나무들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서서

하늘을 향해 길게 팔을 내뻗고 있다

밤이면 메마른 손끝에 아름다운 별빛을 받아

드러낸 몸통에서 흙속에 박은 뿌리까지

그것으로 말끔히 씻어 내려는 것이겠지

터진 살갗에 새겨진 고달픈 삶이나

뒤틀린 허리에 밴 구질구질한 나날이야

부끄러울 것도 숨길 것도 없어

한밤에 내려 몸을 덮은 눈 따위

흔들어 시원스레 덜어 다시 알몸이 되겠지만

알고 있을까 그들 때로 서로 부둥켜안고

온몸 떨며 깊은 울음을 터뜨릴 때

멀리서 같이 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갈  대    /   신경림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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