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교리

[스크랩] 혜충 국사(慧忠國師)의 무봉탑(無縫塔)

희명화 2013. 2. 18. 09:29

 

혜충 국사(慧忠國師)의 무봉탑(無縫塔)

    庭前楊柳春來靑

    人生一去更來難

    欲免生死輪廻苦

    聞得正法明此事

     

    뜰 앞에 버드나무는 봄이 오면 저절로 푸르지만

    인생은 한 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렵도다.

    누구든지 생사윤회의 고통을 면하고자 할진대는

    정법(正法)을 듣고 이 일을 밝힐지니라.

    어떠한 것이 이 일이냐?

    脚下三尺

    다리 아래 석 자로다.

     

    여러 대중들은 이 말의 뜻을 알기가 무척 어려울 것이다.

    이것은 자신의 성품을 바로 보아서 정법정안(正法正眼)을 갖춘 이라야만

    이 말의 뜻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각자가 지니고 있는 성품(性品)을 바로 볼 수 있느냐?

     

    여기 모인 여러 대중은 33인 큰스님 초청 법회에 참여하셔서 오늘까지 20일이 넘게

    대덕 스님네의 법문을 들어왔다.

    초청 큰스님마다 평생 수행하신 각자의 장처(長處)가 있고

    또, 공부 지시하시는 법도 각기 다르다.

    그렇다면, 그 여러 방법들 가운데서 가장 힘을 덜 들이고 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진리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일까?

     

    이 견성법(見性法)이라고 하는 것은

    화두(話頭)를 들어서 바로 참구하는 데 묘리(妙理)가 있다.

     

    요즘 제방(諸方)에는 염불선(念佛禪) 을 주장하는 이도 있고, 무심무상(無心無想) 즉,

    생각 없이 무심(無心)을 지켜서 견성(見性)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의 법을 모르고서 하는 말이다.

     

    중생(衆生)은 마음 가운데 이생각 저생각 온갖 망념(妄念)이 쉬지 않고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또,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하기 때문에, 아무리 무심(無心)하려고 해야

    무심할 수가 없고, 생각을 없애려고 해야 없앨 수가 없는 법이다.

    이러한 중생의 업(業)을 없앨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화두참구(話頭參究)이다.

     

    화두 한생각을 오매불망(寤寐不忘) 간절하게 참구하다 보면,

    무수히 일어났다가 없어지는 기멸심(起滅心)은 점점 차단 되어 간다.

    이를 좇아서 참의심[眞疑心]이 돈발(頓發)할 것 같으면, 기멸심은 완전히 끊어지고,

    화두일념(話頭一念)만이 현전(現前)되어 보고 듣는 것을 다 잊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된다.

     

    부처님께서도 보리수 나무 밑에 좌정(坐定)하셔서 6년의 세월이 지나간 줄을 모르셨고,

    머리 위에 새가 집을 짓는 것까지도 모르셨다.

    이와 같은 삼매(三昧)가 지속되는 가운데, 중생의 업(業)인 온갖 망념(妄念)은

    빙소와해(氷消瓦解) 되어지고, 홀연지간(忽然之間)에 마음땅이 드러나는 법이다.

     

    선법(禪法)이 크게 흥성했던 중국 당대(唐代)의 역사를 잠깐 보면,

    3대(代) 고종이 죽고 나서 고종의 왕후인 측천왕후가 중종과 예종을 폐위하고

    스스로 제위(帝位)에 올랐던 때가 있었다.

     

    그리하여 덕 높은 큰스님을 국사(國師)로 모셔서 사심 없는 지혜의 안목(眼目)으로써

    선정(善政)을 펴려고, 당시에 명성이 자자하던 혜충(慧忠) 선사와 신수(神秀) 대사

    두 분을 청(請)했다.

     

    혜충(慧忠) 선사께서는 백애산(白崖山)에서 40년 동안 내려 오시지 않고 수도(修道)에만

    전력하셨는데, 왕후가 세 번이나 사신을 보내서 간청하므로 하는 수 없어 내려오셨다.

     

    왕후는 이 두 큰스님 가운데 도(道)가 장한 한 분을 추대해 모셔야겠는데,

    자신은 식견(識見)이 얕아 두 분의 지혜의 안목을 판가름할 수가 없는지라,

    생각하고 생각한 끝에 묘책을 냈다.

    시녀를 시켜서 두 큰스님의 목욕시봉을 들게 한 것이다.

     

    시녀들이 목욕시봉을 다 해드리고 나서 그 과정을 사실대로 말하자 측천왕후가 듣고는,

    “물에 들어감으로 인해 장한 분을 보았도다.” 하고 혜충 선사를 국사(國師)로 모셨다.

     

    그리하여 혜충 선사는 측천왕후 때부터 현종, 숙종, 대종에 걸쳐 국사가 되셔서

    널리 교화(敎化)를 베푸셨다.

     

    세 천자(天子)가 다 신심(信心)이 돈독했는데, 특히 숙종은 그 신심이 대단했다.

    그래서 아침 조회 때마다 국사를 모셔와서 사신들과 함께 법문을 들었는데,

    이 때 항시 친히 가서 예를 올리고 손수 말고삐를 몰아서 모시고 왔다 한다.

     

    하루는 숙종(肅宗) 황제가 혜충 국사 처소를 방문하여 한 가지 청(請)을 드렸다.

    “서천(西天)에서 온 대이삼장(大耳三藏)이 타심통(他心通)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다고 하니 스님께서 한번 시험해 보십시오.”

    그래서 국사께서 대이삼장을 불러 물으시기를,

     

    “그대가 타심통으로 사람의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다고 했는가?”

    하니, 대이삼장은 그러하다고 답했다.

     

    국사께서는 잠시 동안 가만히 계시다가 물으시기를,

    “노승(老僧)의 마음이 지금 어디에 있는고?”

     

    “스님께서는 일국(一國)의 스승이시거늘, 어찌하여 촉천(蜀川) 강 위에 배들이

     경주하고 있는 것을 보고 계시옵니까?”

     

    국사께서 또 잠시 가만히 계시다가,

    “지금은 노승(老僧)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고?”

     

    “스님께서는 일국(一國)의 스승이시거늘, 어찌하여 천진교(天津橋) 위에서 원숭이들이

     서로 희롱하는 것을 보고 계십니까?”

     

    국사께서 또 잠시 계시다가 물으셨다.

    “지금은 노승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고?”

     

    대이삼장이 이번에는 아무리 찾아도 마음 있는 곳을 찾지 못하여,

    “아무리 찾아도 모르겠습니다.”

    하자, 국사께서 큰 소리로

     

    “타심통(他心通)이 어디에 있는고?”

    하고 꾸짖으셨다.

     

    그러면 두번째까지는 정확히 알아 맞췄는데, 세 번째 물음에서는 왜 알지 못했을까?

    대이삼장(大耳三藏)뿐만 아니라, 삼세(三世)의 모든 부처님과 역대 도인도,

    충 국사께서 마음 두신 곳을 바로 보기가 어렵다.

    수행(修行)이 깊어 무심(無心)의 삼매(三昧)에 들 것 같으면,

    귀신도 보지 못하고 모든 부처님과 도인이 다 보지 못하는 법이다.

     

    후일에 어느 스님이 조주(趙州) 선사께 여쭙기를,

    “국사께서 세번째는 어디에다 마음을 두셨기에 대이삼장이 보지 못했습니까?”

    하니, 조주 선사께서는

     

    “삼장의 콧구멍 위에 있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후에 다시 현사(玄沙) 선사께 여쭈었다.

    “삼장의 콧구멍 위에 있었을진대는 어찌 보지 못하였습니까?”

     

    “너무 가까운 까닭에 보지 못하였느니라.”

     

    깨달은 이는 이렇게 척척 나온다. 이것이 가장 멋이 있는 법문이요, 고준한 법문이다.

    시회대중(時會大衆)은 대이삼장과 혜충․조주․현사 선사의 용심처(用心處)를 알겠는가?

     

    三箇四箇漢

    弄泥團漢

    세분 네분이 모두

    진흙덩어리를 만지는 이들이로다.

     

    시자야! 네 분에게 차나 한 잔씩 대접하여라.

     

    또 어느 날, 숙종 황제가 혜충 국사를 참방(參訪)하여 여쭙기를,

    “스님께서 열반에 드시면 무엇을 해드리리까?”

    하자, 혜충 국사께서 대답하셨다.

     

    “노승(老僧)을 위해서 무봉탑(無縫塔)을 조성(造成)해 주십시오.”

    그러자 숙종 황제가 다시 여쭙기를,

     

    “그러면 탑의 모양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니, 혜충 국사께서 아무 말 없이 한참 앉아 계시다가 물으셨다.

     

    “알겠는가?”

    “모르겠습니다.”

    숙종 황제가 그 뜻을 도저히 알 수 없어서 이렇게 대답하자,

    혜충 국사께서 다시 이르셨다.

     

    “그러면 이후에 나의 제자 탐원(耽源)을 청해서 물어 보시오.”

    무봉탑(無縫塔)의 모양을 묻는데, 아무 말 없이 앉아 계신 도리(道理)가 무엇인가?

     

    후에 설두(雪竇)선사께서 여기에 대해서 송(頌)하시기를,

     

    無縫塔見還難

    澄潭不許蒼龍蟠

    層落落影團團

    千古萬古與人看

     

    무봉탑은 보기가 어려운지라

    맑은 못에는 푸른 용이 사리고 있는 것을

    허락하지않음이로다.

     

    층층이 우뚝하고 그림자 둥글고 밝으니

    천만년토록 만인에게 보게 하누나.

     

    참으로 멋진 점검이다.

    “꿰맨 흔적이 없는 탑은 육안(肉眼)으로써는 보기가 어려운 지라,

    맑은 못에는 푸른 용이 사리고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한다.”하는

    여기에 묘(妙)한 살림살이가 있다.

     

    어찌해서 무봉탑(無縫塔)은 보기가 어렵다고 하며,

    맑은 못에는 창룡이 사리고 있는 것을 허락치 아니한다는 것은 또 무슨 뜻인가?

     

    여기에서 확연명백한 눈이 열린다면, 불법진리(佛法眞理)의 안목(眼目)을

    온전히 갖추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시회대중은 혜충 국사와 설두 선사를 알겠는가?

     

    하늘과 땅을 꿰뚫고, 홍파(洪波)가 치고 쳐서 백랑(白浪)이 하늘까지 치솟는,

    그 가운데서 전신(轉身)하여야 두 분을 바로 보리라.

     

     

     

     

출처 : ♤ 바람이 머무는 산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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