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전, 남편과 여행을 하던 중에 서울에 살고 있는 여동생으로부터 문자가 날라왔다.
동생의 시어머님이 돌아 가셨다는 소식이였다.
그 어르신이 병원에서 보낸 시간이 거의 3년은 되었을 것 같다. 처음에는 특별한 병명은 없었고 노환 탓에 여기저기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나이 88세면 몸뚱아리도 쓸만큼 써먹었기에 닳고 낡지 않은 곳이 없겠지만, 그래도 의료기술이 발달하다 보니 훌륭한 의사를 만나서 다시 회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자식들은 온 정성을 다해서 이 병원 저 병원을 찾아 다니며 이 약 저 약을 처방받고 입원까지 하게 되었다.
나중에는 수술도 여러차례 하게 되었고, 고무호스를 몸에 꼿기도 하고 산소호흡기까지 대동하더니 결국 돌아 가셨다고 소식이 전해왔다. 문자를 읽는 순간, 사돈 어르신께서 '이제는 고통을 멈출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이다 ' 라는 생각이 홀연히 떠올랐다. 그리고 병든 어머니를 지켜보느라 마음고생을 많이 했던 제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마음씨 착한 우리 제부가 이제는 마음고생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이 참말로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부모에게 지극한 효자인 남편과 살고 있는 내 여동생의 마음고생도 이제는 끝난것 같아서 안도의 숨이 들었다. 나무아미타불!
병든 어른을 가족이 오랫동안 수발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서, 대부분 입원을 하게되면 간병인을 쓰게된다. 간병인을 둔다는 것도 경제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환자 본인의 재산이 있다면 천만 다행한 일이겠고, 그나마 자식들의 형편이 괜찮아서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더욱 흐믓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병원비 때문에 많은 고통을 겪고 있으니, 노환으로 고생하시는 노부모님들을 쉽게 병원에 입원시키는 일도 말처럼 쉬운일이 아니다. 그래서 집안에 환자가 생기면 불화가 생기고 근심걱정이 자연히 발생하게 된다.
사람이 살다가 이 세상을 떠나는 일이 정말 덧없는 일 일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지도 않았지만, 인연에 의해 부모를 만나게 되었고,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태어났다. 우리가 지금의 생을 마감할 때는 '돌아 가셨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세상은 어디고 저 세상은 어디일까? 아마도 전생과 후생 그리고 현생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알고보면, 전생과 후생과 현생이 지금 이 생에서 공존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단지 볼 수 없고 만질 수는 없지만 이치적으로 따져본다면 수 많은 생이 갈곳은 오직 이 우주밖에 없으니 이를 통틀어서 지금! 이라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다. 오직 지금 밖에는 없는 것이다. 지금이 과거이고 현재이고 미래이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살다보면, 어릴 적 부터 고통은 시작된다. 아무리 작은 생명체라도 각기 업식을 갖고 태어났기에, 근본적으로 탐내고, 화내고, 어리석은 마음이 내면에 깔려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근본무명 이라고 말하고, 기독교에서는 원죄를 말하고 있다. 그런 욕망의 세계속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중생이라고 부르고, 깨어있는 마음으로 사랑과 자비심을 일으키며 살아가는 사람을 부처라고 말한다. 부처는 이름이 부처가 아니라 부처의 행위를 하는 사람을 부처라고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부처가 되기 위해서 자신을 돌아보는 마음수행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일은 우리의 마음속에 탐진치 삼독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도 있다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깨닫고 보니, 모든 중생이 부처의 성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다고 한다. 그러니 생활속에서 문득 삼독심이 올라올 때면, 바로 그 순간 스스로의 마음을 알아채고 참회를 한다면 그 순간이 바로 부처로 화현되는 순간인 것이다. 그래서 찰라생 찰라멸 이라는 말도 한다. 부처와 중생이 한몸 속에 있으니, 우리가 순간순간을 어떻게 잡아채서 쓰느냐는 순전히 우리 마음의 작용에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믿고, 이해하고, 실천하고, 증득해 버린다면 더 이상 윤회의 삶이 아니라 불생불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어떤 몸을 받게 되거나, 어떤 환경에서 태어나더라도 걸림없이 유유자적하게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대자유인의 삶이 아닐 런지....
그래서 태어난 것은 모두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결코 덧없이 태어났다가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 태어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연에 의해 지금까지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비록 알 수 없다고 해도, 인연의 강은 소리없이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 몫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불평 불만을 한다고 해도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하고 있다.
이왕에 이 세상을 살아갈 것 같으면
좀 더 당당하게 지혜롭게
자비심을 듬뿍 안고서
세상을 향하여 묵묵히 걸어가야 할 것이다.
분명!
내가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니까...
결코 세상은
덧없음도 아니고 그렇다고 커다란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세상속에서
하나의 등불이 되고자 서원해 보자.
나는 붓다의 제자이니까......
- 사돈 어르신의 극락왕생을 발원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
'날마다 좋은 날'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산대추 (0) | 2011.10.31 |
---|---|
2011 대구광역시 무형문화재祭典 (0) | 2011.10.25 |
2011.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 (0) | 2011.10.23 |
가을이 주는 축복 (0) | 2011.10.21 |
신매동 장날 풍경 (0) | 2011.10.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