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고 (心告)
무엇하다 왔는고?
시 쓰다 왔습니다
시 쓰다 말고 정치는 왜 했노?
세상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래, 세상은 좀 바꾸었나?
마당만 좀 쓸다 온 것 같습니다
깨끗해졌다 싶으면
흙바람 쓰레기 다시 몰려오곤 했습니다
수천 년 동안 당신께서 못 바꾼 세상을
저희가 십여 년에 어찌 바꾸겠습니까?
세상일에 왜 간섭하고 싶어 했노?
혹한이 깊어지면 봄 햇살로 간섭하고 싶어 하시듯
땅이 메마르고 갈라지면 빗줄기 보내
세상일에 개입하고 싶어 하시듯
저도 그리하였을 뿐입니다.
애썼다. 가서 꽃밭에 물이나 주거라
제 영혼의 꽃밭에 물 주어도 될까요?
겉 넘는 소리 그만하고 시키는 대로 해라
말도 좀 줄이고
할 말을 해야 할 때
제대로 못하고
잡다한 말만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알았으면 됐다
나머지 날들을 당신께 맡기겠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언제 네가 내 말 들었더냐
도종환 시집 <정오에서 가장 먼 시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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