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록

[스크랩] 조주록강의 59 (110418) 오늘 아침에 또 바람이 일어났군

희명화 2015. 4. 8. 21:46



학인이 물었다.
"백가지 뼈가 다 무너져 흩어져도 한 물건만 오랫동안 영묘할 때는 어떻습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오늘 아침에 또 바람이 일어났다."

問 百骸俱潰散 一物鎭長靈時如何 師云 今朝又風起

백가지 뼈가 다 닿아 흩어져도 정신 하나만은 영묘(靈妙)하여 분명할 때는 대단한 경지이다. 대개 몸이 아프면 마음도 바로 흐트러지고 만다. 아파서 들어 누워있어 보면 아픈 것도 아픈 것이지만 정신이 산란해서 더 고통스러울 때가 있다. 이것을 혼침산란(昏沈散亂)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참선이나 염불 삼매를 익혀 경계가 깊어져 한번 삼매에 빠지면 몸도 잊고 주변도 잊는 경계가 오는 수가 있다. 수 시간이 지나도 화두나 불명호(佛名號) 하나에 몰두되어있으므로 모든 것을 잊는다. 몸도 잊고 마음도 잊는 몰아의 경지다. 이러할 때의 경지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여기에 대하여 조주 선사는 '오늘 아침에 또 바람이 일어났다.'고 대답했다. 설사 그런 경지에 들어갔다고 하여도 그것은 집착할 것이 못 된다는 뜻이다. 고요한 아침에 한낱 바람이 부는 것과 같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기특한 경지라고 생각할 것도 없고 특별나다고 생각하지도 말아야 한다. 마음을 내면 벌써 도와 멀어지기 때문이다.

학승이 물었다.
"3승 12분교에 대하여서는 여쭙지 않겠습니다만 어떤 것이 달마조사가 인도에서 온 정신입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수고우가 새끼를 낳았으니까 잘 돌보아주어라."
학승이 말했다.
"그 뜻이 어떤 것이옵니까?"
조주 스님이 말했다.
"나도 몰라."

問 三乘十二分敎卽不問 如何是祖師西來意 師云 水牯牛生兒也好看取 云 未審此意如何 師云 我亦不知

달마 스님이 불법의 대의를 깨닫자 중국으로 건너와 부처님의 선법을 전파하였다. 이후 중국에서 새로운 불교가 일어났는데 바로 선불교(禪佛敎)이다. 선불교는 부처님의 정신을 높이 선양한 불교이다.

따라서 가지치고 잎 따는 식의 지엽적인 것은 다 버리고 오직 본질을 가리키면서 사람을 깨닫게 한다. 사람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이 바로 정신이 깨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 많고 설명이 많으면 오히려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가리킴의 목적은 스스로 깨닫게 하는데 있어야지 설명까지 해주면 더더욱 깨달을 기회를 놓치고 만다.

그래서 선사들은 짧은 말, 무언의 행동, 중간 설명을 잘라먹은 언어로써 가리킨다. 달마가 동쪽에서 온 뜻 역시 짧은 언어이고 화두이다. 화두는 비밀언어이고 질문을 품고 있는 명제이다. 이것을 알게 되는 날 불법의 대의와 우주와 인생에 대하여도 통달하게 된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것은 중국에 부처님의 선사상을 전파하려고 왔다. 그런데 이렇게 개념적으로 말하지 말고 그 정신을 그대로 보인다면 어떤 것이 되겠는가? 조주 스님은 ‘수고우[牛]가 새끼를 낳았으니까 잘 돌보아 주라’ 고 말했다. 엉뚱한 말같이 들리지만 두고두고 이 화두를 들고 있다 보면 어느 날 이 말에 눈이 번뜩 뜨일 때가 있을 것이다.

도는 평범한데 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참선하고 수행하는 것이다. 만일 수행자가 자기라는 상[我相]이 다 떨어져 나갔다면 그 자체가 진귀한 보물이고 평범함으로 돌아간 것이고 도에 들어간 것이다.

만일 본 납자에게 수고우가 새끼를 낳았을 때 잘 돌보아 주는 것에 무슨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까? 하고 묻는다면 다음과 같이 대답하겠다.
"난 바쁘니까 큰 스님께 가보게."

無不禪院 禪院長 石雨
(cafe.daum.net/mubulsunwon)

 

 

 

 

 

 

 

 

출처 : 무불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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