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이! 달 / 신달자
2023년> 4월에 출간된 신달자 씨의 시집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에서 발췌한다.
작가는 1943년 거창에서 출생했으며 등단한 지
2023년 현재로 59년이 됐다. 그동안 집필한 작품은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이 있으며 수상경력도 다채롭다.
어이! 달 / 신달자
어떻게 여길 알았나?
북촌에서 수서에서
함께 손잡고 걸었던 시절 지나고
소식 없이 여기 경기도 심곡동으로 숨었는데
어찌 알고 깊은 골 산그늘로 찾아오다니......
아무개 남자보다 네가 더 세심하구나
눈웃음 슬쩍 옆구리 찔러 넣던
신사보다 네가 더 치밀하구나
늦은 밤 환한 얼굴로 이 인능산 발밑을 찾아오다니......
하긴 북촌 골목길에서 우리 속을 털었지
누구에게도 닫았던 마음을 열었지
내 등을 문지르며 달랬던 벗이여
오늘은 잠시라도 하늘 터를 벗어나
내 식탁에서 아껴둔 와인 한잔 나누며
가장 아끼는 안주를 아낌없이 내놓겠네
마음꽃 한 다발로 빈 의자를 채워주길 바라네
어이! 달!
허공 한 줌에 파닥거리는 생 / 신달자
허공 한 줌을 주워 올린다
가벼웠는데 점점 무게를 느끼게 하는 빈 주먹
그래 살아보니 안 보이는 것이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나
안 보이는 것이 얼마나 찍어 내렸나
내 뼛속에 내 살 속에 내 핏속에
꿈틀거리며 난장으로 살아 내려 발버둥 치는
소리 소리 소리
허공 한 줌 쥐었다가
후딱 손을 터니 내 생이 훌렁 비워지는구나
비웠다고 생각하는 그 빈손에 찰거머리처럼 붙어있는
아직 살아 있는 생
작은 조각일지 몰라도
너무 할 말이 많고 너무 쓸 것이 많다는
그냥 손 털고 비 맞고 서 있는 오후
보이지 않는데
무진장이라
고요하게 아무것도 스치지 않는
느낌으로 조여 오는 파닥거리는 이 무엇
ps. 오래전, 존경했던 선생님이셨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답니다. 시집을 읽다 보니 선생님께서 건강이 안 좋으신 것
같아 보입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흘러가는가 봅니다.
모쪼록 건강 잘 챙기시고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