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 명시

어이! 달 / 신달자

희명화 2025. 1. 11. 13:44

 

2023년> 4월에 출간된 신달자 씨의 시집

<전쟁과 평화가 있는 내 부엌>에서 발췌한다.

작가는 1943년 거창에서 출생했으며 등단한 지

2023년 현재로 59년이 됐다. 그동안 집필한 작품은

다수의 시집과 산문집이 있으며 수상경력도 다채롭다.

 

어이! 달    /   신달자

어떻게 여길 알았나?

북촌에서 수서에서

함께 손잡고 걸었던 시절 지나고

소식 없이 여기 경기도 심곡동으로 숨었는데

어찌 알고 깊은 골 산그늘로 찾아오다니......

 

아무개 남자보다 네가 더 세심하구나

눈웃음 슬쩍 옆구리 찔러 넣던

신사보다 네가 더 치밀하구나

늦은 밤 환한 얼굴로 이 인능산 발밑을 찾아오다니......

 

하긴 북촌 골목길에서 우리 속을 털었지

누구에게도 닫았던 마음을 열었지

내 등을 문지르며 달랬던 벗이여

 

오늘은 잠시라도 하늘 터를 벗어나

내 식탁에서 아껴둔 와인 한잔 나누며

가장 아끼는 안주를 아낌없이 내놓겠네

마음꽃 한 다발로 빈 의자를 채워주길 바라네

어이!  달!

 

 

허공 한 줌에 파닥거리는 생    /  신달자

 

허공 한 줌을 주워 올린다

가벼웠는데 점점 무게를 느끼게 하는 빈 주먹

 

그래 살아보니 안 보이는 것이

얼마나 가슴을 쓸어내렸나

안 보이는 것이 얼마나 찍어 내렸나

 

내 뼛속에 내 살 속에 내 핏속에

꿈틀거리며 난장으로 살아 내려 발버둥 치는

소리   소리   소리 

 

허공 한 줌 쥐었다가

후딱 손을 터니 내 생이 훌렁 비워지는구나

비웠다고 생각하는 그 빈손에 찰거머리처럼 붙어있는

아직 살아 있는 생

 

작은 조각일지 몰라도

너무 할 말이 많고 너무 쓸 것이 많다는

그냥 손 털고 비 맞고 서 있는 오후

 

보이지 않는데

무진장이라

 

고요하게 아무것도 스치지 않는

느낌으로 조여 오는 파닥거리는 이 무엇 

 

 

ps. 오래전, 존경했던 선생님이셨는데 한동안 잊고

있었답니다. 시집을 읽다 보니 선생님께서 건강이 안 좋으신 것

같아 보입니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흘러가는가 봅니다.

모쪼록 건강 잘 챙기시고 좋은 글 많이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세요.....